5. 잘 자요, 사랑해

하루의 끝에 너

by 후우


반복되는 일상 속 안정감. 습관이 된 사랑의 말.






"잘 자요, 사랑해."

우리가 매일 잠들기 전에 꼭 하던 인사였다.

전화로든, 카톡으로든.

피곤한 날에도, 다투고 나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건네던,

하루의 끝에 닿는 말.

그 말만큼은 빠지지 않았다.


오글거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런 보이는 애정 표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놓치기 쉬운 감정들이나 시간이 지나 가볍게 여겨질지도 모를 우리의 사랑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매일 조금씩이나마 더 깊이 스며들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밤마다 우리는, 꼭 그 인사를 나눴다.

작지만 익숙한 인사말이 가진 무게가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도록.


누군가에겐 흔한 말일지 모르지만

우리 사이에선 그게 하나의 작은 약속 같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든,

그 말로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

그 한마디를 듣고 나면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고,

진짜 '끝'이 되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정확한 시작은 희미하지만,

아마 연애 초, 장거리에 익숙해지지 못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자주 보지 못하고, 표현이 부족하다는 말이 오가던 시기.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마음이 자주 엇갈리던 때.

'내가 사랑받고 있는 걸까?'

'이 감정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많았던 즈음.


어느 날, 평소처럼 전화를 하던 중

낮에 들었던 성시경의 노래 〈뜨겁게 안녕〉이 떠올랐다.

마지막에 '잘 자요' 하고 끝나는 그 목소리가 참 좋았던 노래.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따라 해달라고 졸랐었다.

"나 성시경의 '잘 자요', 너 목소리로 듣고 싶어."

"잘 자요."

그 말이 네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당연하게 말했다.

"사랑해도 해줘."

넌 웃으며, 조금 쑥스럽게 말했다.

"사랑해."


내가 좋아하는 네가, 네 목소리로 해주는 그 말.

좋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 이거였다.


그날부터였다.

밤마다, 우리는 그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름 붙이자면 ‘잘 자요, 사랑해 루틴’.

사랑을 말로 확인받고 싶었던 내가

표현이 서툴던 너에게 요구했던 방식이었지만,

그게 어느새 우리 둘 단에게 꼭 필요한 말이 되었다.


“마음을 아는데, 굳이 꼭 해야 해?”보단,

“일단은 말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습관.

처음엔 조금 어색했고, 가끔 까먹기도 했지만

몇 번, 몇 달, 몇 년을 반복하다 보니

그 말 없이는 잠들기 허전한 날들이 많아졌다.


처음엔 건조했던 그 말에도

시간이 흐르며 감정이 스며들었다.

하루 중 가장 늦은 시간, 가장 조용한 순간,

가장 진심으로 건네던 말.

반복된 말을 통해 마음도 근육처럼,

조금씩 단단해진 것 같았다.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거창한 이벤트보다,

매일 밤 반복되는 “잘 자요, 사랑해” 같은 것.

습관이 된 진심, 의례가 된 다정함.

별일 없는 하루에도 우리는

그 말로 서로의 하루를 감싸 안았다.


그 작은 인사 한마디가

멀리 떨어진 거리를 조금씩 메워주었다.

직접 만나지 못해, 다투고 어긋나던 날에도

그래도 마지막엔 늘 "잘 자요, 사랑해"로 끝맺었다.

그 말 하나로 정리가 되던 감정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말일 수 있지만

우리에겐 '마지막까지 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툭 던지듯 말하던 날도,

한숨을 담아 조용히 건네던 날도 있었지만

그 말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

그게 우리가 아직 괜찮다는 증거였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굴을 보지 않아도,

"잘 자요, 사랑해."

그 말이 있으면, 괜찮다고.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만,

그 인사말이

조금씩 어긋나던 우리를

8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해 준 방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말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지만,

자기 전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아무 알림도 없는 화면을 보며

문득 텅 빈 마음이 비칠 때가 있다.

그 말이 그리운 순간이다.

너의 목소리.

“잘 자요. 사랑해-.”

그 단순했던 말속에 담긴 안정감이 조금은 그립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랑을 아주 서툴게 시작했지만

그 말을 매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성장이었다고 믿는다.


그 익숙한 루틴이 사라지고

그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낯선 날들이 시작됐지만,

그 말이 가진 온도만큼은

끝내 낯설지 않았다.


“잘 자요, 사랑해.”

그 말은 지금도 여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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