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은 나를 이렇게 바꿔놨다.

떠났음에도, 나를 더 좋게 만들었다

by 후우





"너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다."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부드러워졌다고? 나는 별로 그런 걸 느끼지 못했는데.

하지만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많이 순해진 것 같아."

"말투가 좀 달라졌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사랑이 날 바꾸고 있구나.


사랑을 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은근하게,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연애 3년 차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꽤 다르다는 걸 인식했다.

나는 늘 앞장서 빠르게 걷고, 먼저 나서서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책임질 일은 묵묵히 감당하는 게 익숙했다.

조금 무뚝뚝하고, 말투도 강한 편이었고,

애교라곤 없었으며, 감정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강했고,

내 삶의 우선순위는 늘 '나'였다.


그런 내가, 너를 만나고 바뀌었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너에게만은 달랐고,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 않던 말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귀엽게 웃고, 농담을 던지고,

어색한 애교도 따라 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고,

칭얼대면 귀엽다며 웃어주는 네 반응이 좋아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굴기도 했다.

그냥 너한테는 많은 부분 의지하려 했다.


늘 앞장서 빠르게 걷던 나는

너와 손 꼭 잡고 나란히 걷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보폭이 큰 너는 보폭이 작은 내가 호다닥 걷는 걸로 보였는지

일부러 천천히 걷곤 했다.

빨리 걷던 나와 보폭이 큰 너.

사실 그냥 각자의 방식으로 둬도 잘 맞았을 거다.

그래도 서로의 속도에 맞춰가려 애쓰다 보니

우리는 점점 자연스럽게 나란히 걷게 되었다.

너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여유가 생겼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아마도 감정의 부드러움일 것이다.

너는 늘 '바뀐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말투가 부드러워졌다고, 예전보다 더 따뜻해진 것 같다고.

너처럼 따뜻한 사람을 곁에 두다 보니,

나도 그렇게 변해간 것 같다.

서로를 우선으로 두거나

연락하는 방식, 반응 하나까지

우리는 점점 서로를 닮아갔다.


그게 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했다.

나는 너를 닮아 부드러워졌는데,

너는 나를 닮아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았으니까.


변한 건 성격만이 아니었다.

취향도 달라졌다.

로맨스 영화는 정말 못 보던 나였다.

"뻔하잖아, 왜 봐?" 하며 고개를 저었는데,

네가 좋아하니까 결국 같이 보게 되더라.

어느 날 먼저 "이거 보자"고 말했고,

너는 "진짜? 같이 봐줄 거야?" 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이 귀여워서

간질거리던 장면도 꽤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입맛.

이건 정말 웃기지만 완전히 변한 부분이다.

나는 원래 입이 짧은 편이었다.

딱 배 안 고플 정도로만 먹고,

특히 배가 더부룩하거나 무거운 느낌을 싫어해서,

딱 정량만 먹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너랑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는 나도 몰랐던 내 입맛을 자꾸 찾아냈고,

배부른 느낌조차 좋아지게 만들었다.

오히려 배고프면 짜증이 나곤 했다.

"한 입만" 하던 내가

"이거 더 있어?"를 묻고 있었다.

같이 먹는 밥이 맛있어서였을까.


내가 싫어하고 네가 좋아하던 돈가스 짜장면 같은 음식도

8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이제 다 좋아하게 되었다.

고기도 좋아하긴 했지만 1인분 대충 먹고 그만이었는데,

너랑 있으면 혼자 800g도 뚝딱 해치우고 있었다.

진짜 어떻게 들어가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종종 네게 물었다.

"나 너무 잘 먹어서 돼지 같지 않아?"

그럼 넌 꼭 "아니, 귀여운데?" 하고 웃었고,

그 말에 늘 안심이 되곤 했다.


물론 너도 변했다.

밥 반 공기도 겨우 먹던 네가

결국 나와 함께 N인분을 나누어 먹던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나는 오직 너 앞에서만 나왔다는 거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냥 '조금 잘 먹는 애' 정도.

숨김없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나오는 건

너랑 있을 때뿐이었다.


나는 원래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선을 중요시 여기는 성격이라 그런지

무의식 중에도 나를 꽁꽁 감추고 살았던 것 같다.

심지어 가족 앞에서도.

하지만 너 앞에서는

내 전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부끄러움도, 거리낌도 없이.

그게 바로 사랑이 만든 거였다.


사랑이란

서로의 색이 서로에게 스며들어

새로운 색이 되어가는 것이다.

예쁜 색만 덧칠되진 않아서

조금 얼룩덜룩했지만 말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데,

좋게만 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래도 그 변화들은 참 소중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꺼내 보인

유쾌하고 귀여운 모습들.

그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변화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비록 그 사랑은 끝났고,

네 앞에서만 편하던 모습들은 더 이상 꺼낼 수 없지만,

그 덕분에 부드러워진 말투도,

넓어진 취향도,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도,

모두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구성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혼자서도 잘하지만,

이젠 누군가와 '함께'하는 법을 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깜짝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끝났지만, 사라지지 않는

조금 더 풍부해진 나라는 사람으로.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웃고,

느긋해지고,

부드러워진 내가

나는 제법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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