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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13. 2019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

내가 끌리는 영화들

더욱 외롭고 싶을 때 볼 만한 영화들


 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약하다. 주변에 아무도 그를 돕지 않고 오로지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인물의 모습에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보통 사람들은 극의 주인공보다는 조금 덜 극단적인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지만 극의 주인공들은 그게 '극'인 만큼, 정말 철저하고 처절하게 살아간다. 극 중에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인물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는 한다. 아래는 그에 해당하는 영화들이다.


1. 더 헌트(2012)


시림을 믿지 못하는 그의 눈빛

매즈 미켈슨의 걸출한 연기가 영화의 80퍼센트 정도는 차지하고 있다. 더 헌트는 두 말할 것 없이 그의 영화다. 감독은 그에게 도망갈 수 없는 억압적인 환경을 던져주었고 그는 드러냄과 감춤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연기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말의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였는데, 체면이고 뭐고 펑펑 울었을 만큼 엄청나게 몰입해서 본 영화다. 억울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인물을 연기한 매즈 미켈슨은 적당히 드러냄으로써 인물의 외로움과 소외를 강조했다. 


 스포를 하기는 싫지만, 마지막에 울리는 총성 하나까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요소들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눈빛이다. 일상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 믿지 못하는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그의 일을 당한 것만큼이나 생생하게 세상에 대한 배신감을 관객에게 전달해준다. 덴마크라는 낯선 나라의 언어로 대화가 이루어짐에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덴마크라는 나라의 추위가 느껴지는 배경과 내용의 일상적 잔인성 역시 서로 잘 어우러진다. 또한 더 헌트라는 제목을 곱씹어 보게 된다. 더 헌트는 어쩌면 사냥 당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리는 총성이 더욱 의미심장한 이유다.


2. 친절한 금자 씨(2005)


이토록 아름다운 금자를 친절하게 만든 이는 누구인가.

 이 영화는 한국 사람에게 '친절하다'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만든 영화다. 교도소 수감 생활 중에 모범수 중에서도 모범수로 꼽히며 친절한 금자 씨로 불리던 이 여인은 교도소에서 출소하자마자 교회에서 나온 선교단 김병옥에게 '너나 잘하세요'라고 외치며 친절하기를 포기해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다소 4가지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후에도 그녀는 친절한 금자 씨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그녀의 얼굴이 너무 친절해서일까? 


 영화를 보다 보면 알게 되지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되기까지 그녀 역시 세상을 믿던 순수한 소녀였고 어떠한 나쁜 의도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그런 삶의 결과는 배신과 수감생활이었다. 세상에게 배신당한 외로운 소녀는 친절하고 아름다운 모범수 여인으로 거듭났고,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 친절하기를 포기하고서는 눈 두 덩이에 뻘건 셰도우를 칠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친절해 보일 까 봐". 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불친절하려고 애를 써도 그녀에게 친절함을 보이는 남자들이 줄줄 따라붙는다. 어쩌면 그녀의 가장 큰 죄는 다른 게 아니라 그 친절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었나 싶다. 위아래에 언급한 두 영화와 비교를 하자면 그녀에게는 도움을 주는 교도소 수감 동기들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복수를 하는 그녀는 분명히 외로운 여인이다. 


3.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세상을 믿던 사람이 세상에 철저하게 배신당하면서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극 중에서 진정으로 그를 도우려는 자는 전무하기 때문에 그녀 역시 엄청나게 외로운 인물이다. 오로지 행복을 바랐을 뿐인 이 여인의 이야기는 세상이 가진 것 없는 한 인간에서 얼마큼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영향권 아래 있다. 특히 친절한 금자 씨를 떠오르게 한다. 비록 이야기 진행 방식은 다르지만 인물의 변화과정 변화되는 계기 등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내용적인 면보다는 장면 연출에서 그 영향이 더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독자적으로 성취하고 있는 것이 적지는 않다. 박찬욱 감독보다 조금 더 팝 하고 톡톡 튀는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주연배우인 이정현이 노개런티로 출연할 만큼 적은 제작비 안에서 상당히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 역시 대단한 점이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적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을 애써 따라 하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이정현의 얼굴은 아주 적당히 생활감이 있어서 이 역할을 맡기에 너무나 적절했다.


 나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약하다. '적막한 절망감'이 느껴지는 연출에 약하다.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다른 시대의 이야기라도 나는 늘 외로운 인물의 곁에 가서 함께 외로워한다. 그러기 위해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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