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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May 12. 2019

말빨 영화

귀에 때려 박는 대사를 가진 영화들 

영화는 대사가 필요 없다?


0. 인 더 하우스(2012)


 프랑소와 오종은 영화를 통해, 영화가 가진 연극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그의 영화들 중에서 <맨 끝줄 소년>이라는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인 더 하우스>는 쏟아지는 대사 속에서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흘려야 할지 드러내고 감출 줄 아는 영화다. 그것이 오종의 특기이며, 매력이 된다. 

 흔히 프랑스 사람들을 두고 갖는 편견 아닌 편견은 논쟁을 좋아하고, 따라서 말이 많다는 것이다. 누벨바그 시절부터 이어지는 프랑스 영화들을 보면 그러한 성향이 반영되어 그런지 실제로 대사가 많은 영화들이 많이 있다. <인 더 하우스> 역시 그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영화에는 대사가 필요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말보다 액션(행동)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조금 더 고급(?)이라는 불문율이 꽤나 퍼져 있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대사에, 대사에 의한, 대사를 위한 '영화'


 대사로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영화도 드물다. 


 다소 제한된 공간성과 넘치는 대사는 영화보다는 연극의 특성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다양한 배경을 선택할 수 있는 영화 장르에서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덜 선호한다. 

 조금 더 스펙터클한 영상을 추구하다 보면, 새로운 기술과 다양한 액션, 그리고 멋진 배경을 담으려 한다. 때문에 수많은 감독들은 오늘도 로케이션 헌팅에 공을 들인다. 

 그럼에도, 거의 연극을 영화로 옮긴 것처럼 느껴지는 대사 폭격 영화들만의 매력이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러한 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들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클로저(2004)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Hello, Stranger? (헬로, 스트레인저?)'라고 하는 대사로 유명한 <클로저>는 몇 년의 시간 차를 두고 변해버린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다소 시간적, 공간적 이동이 있기는 하지만 주요 공간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며 거의 실내 공간이다. 연극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원작이 동명의 연극이며, 문근영이 대학로에서 해당 연극을 공연한 적도 있다. 내가 직접 연극을 보지는 않았지만 각색을 많이 하지 않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게 감독인 패트릭 마버는 연극 클로저의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는 두 연인의 첫 만남, 큰 싸움, 헤어진 후 등을 담는다. 각각의 시간대 사이에 큰 간극이 있고 띄엄띄엄 중요한 장면들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상당한 감정의 진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지만 완벽하게 몰입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시간적 공백 때문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지만 나는 그냥 그랬던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주드로, 나탈리 포트만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영상물이 아닌가 싶다.



2.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



 불멸의 고전으로 남은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 은 실로 엄청난 영화다. 영화학도들에게는 교과서로 추앙받는 <시민 케인>보다 오억 배 정도 재미있고, 엄청난 연출력, 그리고 연기력이 돋보인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한 살인사건을 두고 평결을 도출해내는 배심원들의 이야기로, 현재 개봉을 앞둔 <배심원들>의 아버지뻘 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헨리 폰다로, 그는 배심원단에게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제대로 된 평결을 도출해내는 주동자 역할을 묵직한 연기력으로 소화한다. 


 이 작품은 후일 할리우드의 전설적 감독이 된 시드니 루멧의 데뷔작으로도 유명하다. 3주 간의 짧은 촬영 기간 안에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드라마를 흡인력 있게 연출해내었기에 데뷔작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만들어진 지 6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재미있고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연극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답게 원작이 희곡일 것 같지만, 반대로 이 영화의 각본을 각색하여 동명의 연극으로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연극으로 올라간 바가 있다. 



3. 완벽한 타인(2018)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제한된 공간, 몇 안 되는 인물들이 대사와 연기만으로 만들어내는 리듬이 있는 영화 말이다. <완벽한 타인>은 58억 원의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써서 5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다. 


  연극적인 구도들이 많이 등장하고 구성 역시 연극적인 면이 있기에 희곡이 원작일 것 같지만 원작은 다른 나라의 영화다. 

 한국판 <완벽한 타인>은 세계에서 4번째로 만들어진 완벽한 타인으로, 오리지널은 이탈리아의 <Perfect Strangers>라는 영화였고, 곧이어 스페인, 프랑스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휴대폰이라는 공감대 있는 소재가 전면에 쓰임으로써 일상적 순간에서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며, 누구든 재밌어할 이야기 소재를 지닌 영화다. 


  스포일러를 당하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질 영화이므로 누구든 한국판부터 일단 설명 없이 감상하기를 바란다.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지닌, 볼만한 한국 영화의 탄생이 반갑다. 결말에서 호불호가 갈리긴 한다.



 말빨 영화의 한계는, 실생활에서는 저 영화들처럼 할 일이 거의 없기에 생긴다. 말빨 영화들은 제한된 장소에서 기승전결을 그려야 해서 상당히 극적인 방향으로 쓰여지는 경향이 있다. 즉, 비현실적이다.


 <완벽한 타인>을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 영화에서 빠져나온 뒤에, "우리 생활을 찍는다면, 제한된 시간 동안 저렇게 많은 연락이 올 일이 없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아무리 얽히고 설킨 관계를 지닌, 문제적 인물들이라고 하여도 겨우 2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만큼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극적 요소가 많아 재미가 생기고 집중도도 높아 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여백'보다는 배를 꽉 채운 뒤의 '더부룩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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