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톰 행크스
톰 행크스가 개고생 하는 영화들
톰 행크스의 개고생=영화의 재미?
최근에 대배우 톰 행크스의 필모 깨기를 해보았다. 84년작 <스플래시>의 풋풋함부터 최근작 <더 포스트>의 노련함까지, 그는 정말 대체 불가의 배우가 분명하다. 지금부터 정리한 영화들은 극 중의 톰 행크스가 개고생을 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감독도, 시대도, 인물도 제각각이지만 같은 배우가 개고생을 한 수작들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어떤 이는 톰 행크스가 개고생을 해야 영화가 재미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1. 캐스트 어웨이(2000)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이 분야 끝판왕이다. 영화는 늘 급하게 살아오던 국제 특송사의 직원인 톰 행크스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그야말로 생존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내 살이 다 뜯겨 나가는 것 같은 공감각적인 부상 장면과 빈곤한 식사 장면이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영양분 섭취가 여의치 않아서 마르고,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히 자란 톰 행크스는 여타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원시인적인 비주얼을 연출한다. 영화는 그가 점점 미쳐가는 순간까지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이어진다.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톰 행크스 혼자 개고생 하는 장면이 한 시간 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도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는 신기한 영화다.
2. 포레스트 검프(1994)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작, 그 유명한 <포레스트 검프>다.
미국 현대사의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포레스트 검프의 존재가 다소 억지스럽고 만화적이지만 순간순간 장면마다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톰 행크스의 연기력이다. 배경이 무인도가 아닐 뿐, 1번에 비해서 개고생 클래스가 뒤지지 않는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극의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주야장천 자발적으로 개고생을 한다. 사실 1-2번 영화는 감독이 같다. 이 정도면 감독이 개고생에 맛들린 것이다.
극 중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로빈 라이트는 후일 <하우스 오브 카드>의 영부인으로 등장하는 그녀가 맞다. 20년이 넘는 시간 차로 인해 외양이 꽤 다르다. 자세히 뜯어봐야 동일인임을 알아챌 수 있다.
3. 스파이 브릿지(2015)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이 영화에서 톰 행크스는 미국 변호사 양반으로 나오는데도 개고생을 한다. 베를린 장벽이 쌓이는 중인 동독과 서독을 오가며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독에 갔다가 노상강도도 당한다. 불쌍하기도 하고,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신념이 투철한 인물임을 깨닫게 하며 영화가 끝난다.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냉전의 시대, 자국 시민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변호를 맡은 자의 고됨, 그리고 반대 진영의 대령과의 우정, 개인적 신념에 대한 주제다. 남과 북의 우정을 그린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조>와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두 영화 모두 실화 바탕의 영화다.
4.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이번에는 나이 먹고 비행기 기장이 되어 개고생 하는 그다. 실제 모델인 캡틴 설렌버거의 외양에 맞추어 살을 빼고 수염을 기른 백발의 톰 행크스를 볼 수 있다. 그는 나이가 몇이든 살만 빼면 잘 생겨진다. 본인은 물론이고 아론 에크하트와의 연기 앙상블도 안정적이다.
비행기 비상착수라는 큰 일을 겪은 캡틴은 본인도 큰 사고의 후유증을 겪는 당사자임에도 끝까지 책임을 다 한다. 155 명 전원 구조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를 짓는 캡틴 설리의 책임감과 뉴욕 시민들의 자발적 도움, 구조된 승객들의 지지가 인류애를 차고 넘치게 만든다. 마지막에 가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틱한 실화 바탕의 영화다.
5. 터미널(2004)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이번에는 (실제로는 없는 나라인) 크라코지아 출신의 외국인이 되어 개고생을 하는 그다. 극 중 빅토르 나보르스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뉴욕 JFK 공항으로 입국하려 한다. 그러나 자국 크라코지아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고 국가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 그는 결국 공항에 있는 사이 무국적자가 되어 버리고 입국도 출국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공항 국제선 환승 터미널에 노숙하기 시작한 그. 처음에는 영어도 제대로 못 했지만 비현실적일 정도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존재감, 친화력, 적응력을 과시한다. 영어도 배워 유창해지고 심지어 돈 벌어서 명품 옷도 산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공항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고생의 과정 후에 공항 터미널의 마스코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는 기다림이란 필연적 상황 속에서 그 시간을 소중히 쓰는 한 인물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깨달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다소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지만, 샤를 드골 공항에서 일어났던 실화 바탕의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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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중에는 유독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 많은 느낌이다. 아마도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그의 무기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 서있든 그럴듯한 리얼리티를 자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점은 배우로서는 막강한 무기다. 우리나라로 치면 송강호가 이런 느낌이다. 그 역시 마약왕, 변호인, 택시 운전사 등에서 실화 바탕의 인물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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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것 중에 몇 작품만 정리를 해보았는데도, 모두 개고생 하는 영화다. 이 외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캡틴 필립스>도 개고생 영화에 속한다. 이쯤 되면 톰 행크스 본인이 고생 시나리오 마니아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