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무비패스#4
*본 리뷰는 브런치무비패스로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파리의 딜릴리(2019) 미셸 오슬로 감독
<파리의 딜릴리>는 2D와 3D가 적절히 접목된 애니메이션이다. 파리의 실재하는 장소와 당대의 예술작품을 재현하기 위해 이러한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 만큼 파리의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영화가 그려내는 때와 장소는 인상파 화가들과 퀴리 부인 부부와 오페라 가수들이 활동하던 '살롱'시대의 파리다. 강가에는 색채의 다변함을 그리는 위대한 화가들이, 무용 공연장에는 인간의 움직임을 그리는 화가들이, 수많은 술집에는 말 많은 문학가들이 웅성 거리던 '교양 있는' 파리 Paris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겉으로 거대한 에펠탑, 개선문, 수많은 건축물과 화려한 의상, 조각과 미술품으로 둘러싸인 파리의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 동물원(지구 반대편 타 인종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공간을 서구인들이 구경하는 장소) 출신의 인물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파리의 비 교양적 일면과 어두움을 드러낸다.
차별 받는 약자는 바로 이 극의 주인공 '딜릴리'다. 딜릴리는 카나키인들로 구성된 인간 동물원에서 가장 이질적인, 흰 존재다. 그의 부모 중 한 사람은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이라 표현되는 '남 태평양 카나키'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는 너무 하얗다고,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너무 까맣다고 배척 당하는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을 두고 '괜찮다, 덕분에 누가 바보인지 금세 구별할 수 있다'라고 완벽한 프랑스어로 이야기할 만큼 딜릴리는 강인한 아이이기도 하다.
'호의'와 '호외' 사이
시대가 혼혈의 어린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
극에는 딜릴리 보다 어린 주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따라서 딜릴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대부분 연장자의 시선이다. 딱 한 명의 예외로 마담 퀴리의 딸이 등장하는데 딜릴리를 보자마자 예쁘다고 연발하기만 한다.
극 중 연장자 인물들은 딜릴리를 전적으로 호의로 바라봐주는 무리(주로 여성들과 소년)와, 딜릴리를 신문의 호외 거리 즉, 기사로 작성될만한 신기한 인물 정도로 여기는 무리(주로 마스터 맨, 권위적 성인 남성)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딜릴리의 아군이고 후자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으나 딜릴리에게 악의적인 경우가 많다.
영화는 시종일관 빠른 리듬으로 흘러가며 끊임없이 장소를 이동한다. 화려한 건축물과 조명으로 둘러싸인 파리의 거리, 야경을 비롯하여 깜깜한 지하의 하수도까지 파리를 상징하는 다층적 공간이 소개된다. 감독은 1시간 34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조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대사량도 상당히 많아서, 역시 프랑스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 벨 에포크
영화가 담아내고 있는 '벨 에포크' 시대는 '좋은 시대'란 뜻으로, 보통 보불전쟁이 끝난 시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일컫는다.
감독인 미셸 오슬로는 상당히 오랜 기간 애니메이션을 만든 거장으로, 필자가 어릴 때 무척 좋아했던 <프린스 앤 프린세스>라는 그림자 애니메이션을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그 후로는 <아주르와 아스마르>, <밤의 이야기>등을 만들어냈다. 그는 여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작품의 주 배경으로 삼았다.
<파리의 딜릴리>는 노년의 프랑스 거장이 처음으로 파리를 무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라 의미가 있기도 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파리를 향한 나의 사랑 고백이다.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도시이자 프랑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성들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곳이다"라고 말한다.
딜릴리 덕분에 영화의 느낌은 상당히 귀엽지만, 영화가 담아낸 벨 에포크 시대의 어둠은 상당한 깊이와 여운을 남긴다. 백전노장 감독이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해 낸 목소리가 부디 오랜동안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