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감독 데뷔작, 영화 미성년(약 스포)
미성년(2018) 2019.04.11 개봉 /96분/ 감독 김윤석
어른 다운 어른과 애보다 못한 어른
어른이 어른 노릇을 못하면 애만도 못하다고 한다. 김윤석이 연기한 주리 아버지 대원은 그렇게 못나고, 비겁하고 자꾸 도피하는 '애보다 못한 어른'이다.
반면 주리 엄마 영주(염정아 분)는 할 일은 하고 할 말도 한다. 자신이 낳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멋진 어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부부다. 그런데 이 애 같은 어른이 어엿한 어른에게 여러모로 피해를 끼치고 만다.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불륜상대에게 아이까지 덜컥 갖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딸 주리(김혜준 분)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아이 윤아(박세진 분)의 어머니인데 말이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멋진 어머니를 둔 주리(김혜준 분)와 달리 윤아(박세진 분)는 믿을 구석이 없다. 열아홉 살에 자신을 가져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 정도 된 어머니. 어릴 때 자신을 갖게 하고는 사라져 연락도 잘 안 되는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아의 세상과 주리의 세상은 사뭇 다르다. 윤아의 방과 후 일과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인 것과 달리 주리는 학원 시간에 쫓긴다.
이렇게 다른 배경과 다른 생활을 가진 두 사람이 맞닥뜨리는 것은 썩 불유쾌한 이유 때문이다. 주리 아버지 대원과 윤아 어머니 미희의 불륜을 두 사람 모두 알아차리며, 참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의 갈등이 시작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김윤석이 맡은 대원 역을 제외한 모두에게 이입이 되어 신기하다. 확실히 배우가 만든 극이라 그런 것일까. 실제 분량 분배를 떠나 누구든 묻히지 않고 잘 보인다. 그리고 96분이라는 러닝타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특별히 군더더기가 없어 보는 내내 집중할 수 있었다.
다만, 딱 한 가지. 결말이 좀 이상했다. 그게 다다. 이상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발견
이 영화의 발견 1. 생명으로 하나 되는 미성년
무책임한 어른이 자신이 낳은 아이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반목하던 윤아와 주리는 공동의 동생인 아기의 탄생으로 인해 서로 가까워진다. 갓 태어난 아기가 불의의 일을 겪을 때, 진심을 다해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이 어린 생명들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고, 어린 친구들이 멋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상상만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솔직히 나도 10대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지금보다는 이 친구들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들의 진심 어린 고군분투는 늘 예쁘다. 이래서 사랑은 언제나 내리사랑인가 보다.
이 영화의 발견 2. 신예 박세진
시종일관 뾰로통한 얼굴로 조곤조곤 속삭이는 신예 박세진은 이 영화가 발견해낸 가장 큰 보석일지도 모른다. 아역배우 안서현도 떠오르고, 배두나도 떠오르고, 차예련도 떠오르는 분위기를 가졌다. 전혀 꾸미지 않은 모습이 미성년 윤아 역할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배우다. 연기는 앞으로 더 잘하게 되겠지!
이 영화의 발견 3. 신인감독 김윤석
신인이지만, 치기 어리다는 느낌은 별로 안 난다. 의외로 노련하다. 그리고 상당히 찰진 데가 있다. 적절히 웃기고 꽤 눈물 난다. 배우로서는 이미 반열에 오른 인물이지 않은가. 이제 그의 새로운 분야, 연출 작품들을 꽤 자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솔직히 그를 신인감독이라 부르는 건, 조금 반칙인 것 같다.
이 영화의 발견 4. 또 염정아
염정아는 사실 더 발견될 것도 없는 사람인데, 나는 자꾸 그녀를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 편집까지 해버릴 태세의 연기력은 농익다 못해 연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수준인 것 같다.
그녀의 호흡, 눈빛을 따라가다 보면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녀에게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