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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Apr 12. 2019

러브리스, 사랑을 잃고 우리는 찍네

브런치 무비 패스 #3 (약 스포)

#본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영화를 감상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러브리스 Loveless, Nelyubov (2017)  2019. 4. 18 개봉 

연출: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러브리스는 2017년에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후, 같은 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으로 긴 시간이 지나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감독은 2003년에 <리턴>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던 러시아의 명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다. 


 이렇듯 나름대로 화려한 뒷배경을 가진 영화였던 탓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꽤 기대를 했다. 17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에도 괜찮게 봤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도 들었다. 다만 아쉽게도 시사회에 너무 딱 맞춰 도착한 탓에 두 번째 열 구석 자리에서 관람을 했다. 화면 왜곡이 꽤 심한 자리라 걱정했지만 영화가 나를 집중하게 만들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 있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영화는 두 번째였다. 데뷔작인 <리턴>으로 그는 내게 아주 예술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남아 있었다.  <리턴>은 너무나도 그리스 신화적인 내용과 회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면들, 강한 상징성으로 뇌리에 남는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삭제 되어 있는 것은 시대성이었다. 상당히 '예술'적인 영화로, 일반 관객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적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이 내가 보지 않은 세 작품(추방, 엘레나, 그리고 꼭 보고 싶은 리바이어던)을 만드는 동안 많이 달라졌나 보다. <러브리스>는 <리턴>과는 완벽하게 다른 영화였다. 시대성을 가득 담은 내용도 그렇지만 표현방식 자체도 상당히 세련되게 변했다. 그 전에는 아무래도 조금 거칠고 치기 어린것이 느껴졌다면 확실히 노련해졌다는 이야기다. 



러브리스,

사랑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냉소와 진언



아이에게 애정이 없는 엄마 제냐(우),  사라져버린 열 두살 아들 알리샤(중),  무기력하고 책임감 없는 아빠 보리스(우)
아이는 아침 식사를 거부하고 집을 나선 뒤 사라진다(좌),  황량한 아파트 근처 숲에서 아이는 나뭇가지에 저런 줄을 묶어 던진다(우)


 시종일관 싸워대는 부모. 각자의 애인을 두고 겉으로만 함께 사는(즉, 불륜을 저지르는) 부모의 모습. 그 가운데서 괴로워하고 방황하는 어린 아들. 이렇게만 두고 보면 마치 한국 드라마의 인물 관계 같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와 달리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불륜 정사나 악녀의 악행 대한 게 아니다. 


 자신들이 낳은 아이에게 끝없이 무관심한 부모와 상처 받은 아이, 스마트폰과 미디어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처럼 사진을 찍고 SNS를 하면서도 정작 제 앞에 놓인 사람의 표정을 살피지 않는 무심無心함에 대한 것이다. 


 이혼을 앞둔 제냐와 보리스는 죽일 듯이 서로 센 척하며 싸운다. 그때  엄마와 아빠가 서로 자신의 양육을 미뤄대는 소리를 듣고 울던 알리샤가 다음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가장 세게 던진 영화의 화두이다. 사라진 알리샤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감독은 자기 배 아파 낳은 아이에게 애정이 전혀 없는 엄마 제냐를, 그리고 그러한 제냐를 만든 무정한 제냐의 어머니를 , 지금 제냐가 삶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대상인 불륜 상대까지 여러 측면에서 사랑 없는 한 인간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구조를 보여준다. 


 그 시점에서 관객은 이 사랑 없는 여자가 지금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을 진짜로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아이에게는 매정하지만 연인에게는 다정한 어머니 제냐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동안, 옆 자리에서는 여자들끼리 모여 셀카를 찍으며 사랑은 무슨 우리끼리 셀카나 찍자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대의, 러시아의, 피상적인 사랑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에 드러난 순간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를,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를 관통하는 강한 메시지를 가진 영화다. 


 그럼에도 다양한 형태의 사랑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그녀가 낳은 것은 사랑이었다. 어떤 형태로 그 아이가 태어났든 태어난 아이는 필연적으로 사랑 그 자체다. 그 가정이 이뤄낸 가장 커다란 결과물이다. 그러나 부모의 자격이 모자랐던 제냐와 보리스는 서로에게 더 세 보이려다 그러한 사랑을 떠나보냈고, 구조대원들과 함께 집 주변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사랑은 이미 사라진 뒤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은 눈에 띈다. 실종된 아이를 찾아 줄 의지도 없는 무능한 공권력(경찰)을 대신하여 자원봉사로 아이 찾기를 도맡아 해주는 대원들의 박애주의적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애정이 부족하여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사랑인 것이다.


 자신의 연인에게 제냐가 처음으로 사람을 사랑해본다고 고백하며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순간 자신이 낳아놓은 가장 큰 사랑이 이 세상에서 지워져 가고 있음을 제냐는 몰랐을 것이다. 


 어떤 사랑은 지나가고 나서 그것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보기에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보리스는 아직도 못 깨달았고 제냐는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의 의미까지 여러모로 곱씹게 되는 영화이니, 누구에게든 한 번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여담: 제냐의 어머니로 나오는 분이 이 영화의 완벽한 신 스틸러다. 나는 그녀가 등장한 장면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다. 대사 하나하나 정말 차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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