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알폰소 쿠아론이 돌아왔다. 어떤 의미에서 <그래비티>보다 훨씬 더 화려한 복귀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스트리밍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주 일부의 상영관에서만 볼 수 있다. 몇 번 상영하지도 않아서 찾아가서 보기 귀찮았지만 알폰소 쿠아론이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나라 멕시코로 가서 자신의 말을 사용하여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안 볼 수가 없었다. 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 일부 감상만 늘어놓도록 하겠다.
기억 조작 영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내게 눈물 날 만큼 그리운, 나를 키워준 부모님, 조부모님 외의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몇 년 전에 '첫사랑' 기억 조작 영화라며 청춘스타가 나온 영화를 홍보하는 글을 많이 접했었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상류층 집안의 아이들과 '유모'의 관계다. 이 영화는 내게 유모가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랜만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영화가 돌아왔다. 원래 잘 만들어진 가짜는 진짜보다 더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로마는 내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 영화 속의 일들은 얼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가. 시대를, 내가 살아가는 오늘날을 지워버리는 가짜의 아름다움, <로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의 여러 형태
이 영화에서, 극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덤덤히 있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포옹 앞에서 무너진다. 사랑은 꼭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의 조합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 상처가 있는 아이들, 상처가 있는 유모인 두 상대방은 서로를 꼭 끌어안으면서 덧난 데를 만져준다. 아이들의 사랑은 순수하고 솔직해서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주인공이 아이들에게 치유 받을 수 있는 이유다.
피도 섞이지 않고 얼굴 생김도 꽤 다르지만, 아이들을 키운 팔 할은 주인공인 유모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를 꼭 끌어안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도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로 느껴진다. 어쩔 수 없는 신분 상하 관계(시켜 먹고, 돈을 받고 하는 사이)는 느껴지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진짜다. 알폰소 쿠아론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반영하였고 자신을 키운 여자들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했다는 말이, 영화를 보고 나면 끄덕거려지는 이유다.
넷플릭스의 시대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스트리밍으로 보기 아까운 영화다. 아마도 알폰소 쿠아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영화를 잘 만들어 놓으면 극장으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라는 체인점에 다소 안 어울리는, 엄청나게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어냈고, 은근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것을 종용한다.
앞서 넷플릭스는 봉준호의 <옥자>를 제작하며 일부 영화제들의 반발을 샀고, 그때도 어쩔 수 없이 영화를 극장에 걸었던 전적이 있다. 그 후로도 넷플릭스라는 적에 대한 전통적인 영화제들의 텃세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넷플릭스가 꾀를 잘 냈다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는 이 영화를 통해서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로 베니스 황금 사자상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고, 알폰소 쿠아론은 넷플릭스의 돈을 쓰면서도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다. 아이러니한 윈-윈을 이룬 것이다. 어쨌든 알폰소 쿠아론의 팬이라면 이 영화를 모두들 극장에서 보려고 할 것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꼭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 <로마 > 리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