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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11. 2019

짠내 영화-영화 소공녀&프란시스 하

주거빈곤과 소확행

 #주거 빈곤 


나는 서울살이를 처음 시작할 때 냉장고를 포기했다. 풀옵션이라고 적힌 집은 값이 너무 비쌌고 옵션 없는 집에 들어가자니 온갖 전자제품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싱크대와 세탁기뿐인 노 옵션의 3평짜리 집에서 냉장고 없이 사는 것이었다. 냉장고 없는 삶은 부지런의 극치 거나 게으름의 극치 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부지런하려면 매일 그날 먹을 양만 알맞게 식재료를 사다 나르면 된다. 이 생활의 단점은 반강제로 채식 주의자가 되고 만다는 거다. 게으르려면 모든 끼니를 싼 음식을 사 먹으 면 된다. 나는 게으를 때 토스트, 편의점 도시락, 삼각김밥 등을 먹으며 살았다. 역시 고기류는 잘 못 먹 지만 그래도 해 먹을 때보다는 낫다. 이 생활의 단점은 이 생활 1년이면 몸에 이상이 조금이라도 온다는 것이다. 


냉장고 없는 삶 4년 만에 나는 냉장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집은 여전히 비좁았지만 냉장고가 생기 자 식기를 처음 발명했을 때의 신석기인처럼 기쁘고 신기했다. 음식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혁명 과도 같았다. 밥을 해서 얼려둘 수도 있고 심지어 얼음도 얼려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릴 때는 당연하 다 여겼던 문명의 혜택이 혜택이었단 걸 비로소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집이 어느 정도 넓지 않으면 못 산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역까지의 거리를 중시하 고 어떤 사람은 집의 내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세권 멀리 사는 사람이 역세권에 사는 사람보다 좀 더 나은 집에 살 확률은 당연히 높다. 다만 역세권도 아닌데 집까지 별로인 곳에도 누군가는 살아야 한다. 오로지 돈 때문이다. 


우리는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늘 원치 않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 예컨대 물건을 사기 위해선 공부하는 시간을 줄이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빈민의 경제 논 리란 대개 그렇다. 


낡고 비교적 넓은 노옵션의 다세대 집과 풀옵션의 좁디좁은 원룸. 자취생은 보통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좀 나은 선택지다. 


보편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선택지에는 고시원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간과 친구 집에 얹혀 살기가 있다. 나는 둘 다 해봤다. 좁은 원룸에도 잘 적응해 사는 나라는 인간은 원래 본가에서도 내 방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본가 바깥으로 나가서 고시원의 내 방을 마련했을 때 기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나 살았을까, 나는 탈출하고 싶어 졌다. 


고시원이란 공간은 더 이상의 설명이 불 필요하게 끔찍하다. 럭셔리, 노블레스 등 어떤 말을 고시원이란 단어 앞에 갖다 붙여도 고시원은 고시원이다.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생활 소음을 공유하는 경험은 안 해봐도 좋을 비인간적 경험이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것은 우선 그 친구와 얼마나 친한지 등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친구의 눈치를 봐 야 한다는 것과 때에 따라 금전 거래 상에서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음이 걸린다. 당연히 내 집이 아니 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도 있다. 다만 친구가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에 내게 불만을 토로할 자 격 같은 건 없다. 여기서 좀 모호해지는 건 내가 얼마나 길게 얹혀살아도 될까, 하는 것이다. 여러 모로 오래 살기에는 불안한 주거환경이다. 


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서울 및 수도권의 젊은이들이 지금도 주거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근린 생활 시설로 분류되는 실평수 2-3평짜리 집들이 월세 50-60만 원을 받는 한 우리 청년들의 주거 환경은 더 나빠질 뿐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자기 집을 구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 


# 영화 속 주거빈곤



 청년의 주거빈곤과 관련된 두 가지 영화, 미국 영화 프란시스 하와 한국 영화 소공녀를 떠올려본다.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는 친한 친구와 함께 브루클린에 살다가 친구와 멀어지면서 살 집이 없어진 고 만다. 그래서 맨해튼의 다른 부자 친구 집에 비싼 월세를 나눠 내며 얹혀살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 친 구의 집에서도 나와야 할 일이 생긴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출신 대학교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살게 된 기숙사다. 나이 먹고 기숙사에 사는 일이 즐거울리는 없건만 주인공의 표정은 밝다. 그러다 결국 영화 말 미에 프란시스는 자그만 집을 구한다. 그러나 작은 우편함에 자기 이름을 구겨 넣다가 이름이 ‘프란시스 하’가 되어 버린다. 뒤에 몇 글자 더 있지만, 뭐 어떤가. 조금 짧은 이름으로 살더라도 제 집이 있는데. 


반면에 한국영화 <소공녀>는 집을 포기하는 이야기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수많은 집 있는 자들과 달리 담배랑 위스키 등의 기호를 즐기기 위해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2014년 최저임금에 준하는 가사 도우미 일당으로 값비싼 위스키와 담배를 사고 나면 집을 유지할 만큼의 돈이 남지 않아서다. 누군가는 이런 미소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할지 모른다. 다만 그녀에게는 겨울이면 잠자기도 어려운 두 평짜 리 방보다 기호 식품과 스타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소확행과 일점 호화 주의 


일찍이 196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작가 테라야마 슈지는 미소와 같은 소비 행태를 두고 ‘일점 호화 주 의’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특정한 분야에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대신 다른 때에는 극도로 빈 곤하게 살아가는 소비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일주일 내내 거리를 전전하며 굶다가 미슐랭 3스타짜 리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식의 예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미식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어쨌든 일점 호화 주의란 것은 가난한 중에도 자신의 ‘취향’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문화인의 궁여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모든 분야에 돈을 아끼는 가운데 여행에 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외식을 덜 하고 책을 빌려보고 때때로 비행기를 예약하는 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돈이 어디서 나서 여행을 다니냐 묻는다. 내가 얼마나 값싸게 살고 얼마나 값싸게 여행하는지 그들은 모르니까.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당신은 빈곤한 청년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한 분야에 돈을 엄청나게 쓰고 후회한 일이 있지는 안 나. 집을 포기하고 돈을 쓸 만큼 사랑하는 분야를 갖고 있다면 쓰는 게 맞는 건 아닐까. 


어쩌면 빈곤을 쉽게 탈출할 수 없는 지금 시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신건강을 위한 일점 호화 주의 적 삶일지 모른다. 그것이 지금‘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란 말로 새로이 표현되고 있을 뿐, 이 는 아주 오래된 개념이라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우리는 ‘지금’의 행복이 필요한 소소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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