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자, 너만!
대충 살 줄도 모르면서
-대충 살자, 너만!
대충 살자!
지난해 말, 트위터를 중심으로 대충 살자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 ‘눈팅’은 하지만 SNS를 하지 않아서 그 유행을 아주 늦게 알게 되었는데, 작년 기준으로 만 53세인 386세대 우리 아버지마저 ‘대충 살자’를 언급하자,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곱씹게 되었다.
대충 살자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대충 살자 라는 말이 유행하는 현상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열심히만 살아버린 세대라는 사실이었다. 약간의 개인 차는 있겠으나 우리 세대(현재의 취업준비생-사회초년생에 해당하는 연령대)와 그 조금 앞 세대의 공통점은, 먹고살 만한 시대에 태어나서 당장 쌀 떨어질 걱정은 없었던 세대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우리에게 교육된 것은 당장 공순이, 공돌이로 취업하여 동생들을 먹여 살리라는 이전 세대의 요구보다는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적인 삶을 살라는 요구에 가까웠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교육열이 높았고, 어떤 시대건 간에 부모가 교육 과정에서 자식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대체로 높은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의 차이점은 노력 끝 보상의 유무다. 즉 이전 세대가 열심히 살았던 대가로 다양한 형태의 사회 진출 기회를 제공받았던 것과는 달리 우리 세대는 열심히 살았던 과거에 대한 대가를 쳐주기는커녕 열심히 살았던 과거가 오히려 미래의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 취업은 되지 않는데 갚아야 할 대학 등록금이 등에 무겁게 얹힌 것이 지금의 청년 세대 대부분의 모습이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대학 졸업장은 이미 의미를 잃은 지 오래지만 말이다.
나는 몇 해 전, 60년대 후반에 출생한 한 남성 분으로부터 지금 시대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섞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4년제 서울 중위권 대학 문과 출신으로, 민주화 운동 때문에 거의 모든 수업을 불참했지만 졸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에 학과 사무실을 통해서 들어온 일자리 제안이 적어도 다섯 건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학과 꼴찌였지만 그 정도였고 다른 사람은 기업을 골라갈 정도였다고 말하셨다. 20년이 넘는 시간 차가 있기에 그 시절과 지금의 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다만 나는 그 말을 듣고 판타지 소설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지금은 대학 진학이 당연시되다 못해서 고졸 취업자와의 형평성, 역차별 문제까지 거론되고, 아예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데 이르러 버린 시대가 아닌가.
위에 거론한 상황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자, 정말 우리 세대가 뭐하러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결말만큼이나 무의미함이 느껴진다. 대충 살자라는 말은 이러한 인생무상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단은.
대충 살아, 너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대충 살자고 해서 다들 대충 사는 줄 알고 대충 살다 정신 차려 보니, 대충 산 것은 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인터넷에서는 모두 솔로인 척 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두 연애 중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제 ‘대충 살자’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대충 살자라는 말에 이면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론 여태까지 열심히 살았지만 보상받을 수 없으니(즉, 아무 의미 없으니) 대충 살자 라는 표면적인 뜻이다.
두 번째 의미는 약간 악의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오해일 수도 있지만 경쟁을 내면화한 대한민국이기에 자꾸 의심하게 된다. 혹시 대충 살자 라는 말은, 인터넷에서 대충 살자고 소리침으로써 한 명이라도 경쟁자를 도태시키려는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을 아닐까. 물론 첫 번째 작성자가 진짜로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대충 살자, 라는 말이 퍼지는 과정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면화된 경쟁은 수많은 악습을 낳지 않았는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새에 누군가의 경쟁력을 축소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 가설은 나만의 음모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나는 ‘대충 살자’라는 말이 주는 안락함을 좋아한다. 잠깐이지만 정말 대충 살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대충 살 줄도 모르면서
일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SNS 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참 SNS를 잘 활용하고, 또 열심히 한다. 대충 살자 라는 말이 퍼진 것도 SNS다. 그 속의 누군가는 어떠한 대가 없이도 열심히 말을 만들어 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퍼다 나른다. 어째서 일까. 홍익인간 정신, 혹은 자기표현 일까? 확실한 것은 알렉스 퍼거슨 같은 사람이 아무리 SNS의 무상함을 외쳐도, 무의미가 의미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의미를 찾고 싶다. 어쩌면 SNS는 결혼, 출산, 연애, 내 집 마련 등을 포기한 지금의 세대가 가장 공들여 키우고 있는 아바타들의 각축장 인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은 진짜 그 계정 소유자의 민낯보다는 그 계정의 소유자가 공들여 만든 아바타의 얼굴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여러모로 대충은 안 사는 젊은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