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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13. 2019

우리의 시대

N포의 시대, 나는 무얼 포기했나


 연일 불경기라는 기사와 취업률이 제자리걸음이라는 기사 앞으로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내 세대의 사람들은 역사상 마지막으로 높은 출산율 속에서 태어났고 그에 따라 엄청난 경쟁률 속에서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하면 아름다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 세대는 그러나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맞이해야 했다. 


 경제 성장률은 제자리에 머물렀고, 취업률은 하향되었다. 일하고자 하는 자는 많고 평균적 스펙도 뛰어났지만 그중에서 다들 일하고 싶은 자리에 들어갈 자는 아주 적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며 했던 공부는 이미 소용없는 것이 되었고 손에 남은 것은 학자금 대출뿐이었다. 겨우 취업에 성공한 자들에게 남은 미래 역시 다소 거칠었다. 부양해야 하는 앞 세대는 너무 많고, 우리를 부양할 더 젊은 세대는 너무 적었다. 집 하나를 구하려고 하면 20년을 손가락 빨면서 돈만 벌어야 하는 집값에 때문에 내 집 마련의 꿈은 요원했다. 게다가 20년이나 근속을 보장해줄 회사인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정체가 의심됐다. 주위에 아직 공부를 지속하는 공시생의 삶이 문득 무척이나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때 고개를 들어 아파트 있는 자들을 살펴보니, 모두 금수저 최소 은수저였다. 변변치 못한 수저를 가진 자의 삶은 경제 성장률처럼 제자리에서 머무르는 것 같았다. 무주택자의 월급 통장을 보면, 월세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니 손에 남는 돈이 없다. 결국 평균적인 삶을 살려고 했던 우리 세대의 청년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던 삶의 요소들을 속속 포기했고, N포 세대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제쯤 되니 나는 이러한 생각이 든다, 우리의 시대가 과연 오기는 할까. 


포기를 포기하다


 나는 세대론에 관심이 많다. 내가 속한 세대는 언론에서 N포 세대라고 불렀다. 삶에 있어 중요한 것들 몇 가지(결혼, 연애, 출산, 집, 차 등)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 주제를 논하기에 적합한 필자인지는 의심이 든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정규코스를 이탈한 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는 같은 세대의 문제를 반은 느끼고 반은 못 느끼는 반은 외부 자고 반은 내부자인 인간이라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내 세대는 N포 세대라고 불리고 있었다. 나는 바란 적도 없던 것을 포기한 세대로 명명되었고 순간 불행해졌다. 그 이름이 나를 가둔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득도 세대라고 부르는 세대. 우리는 어쩌면 포기를 포기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집, 차, 가정, 연애에 목숨을 걸고 쟁취하려는 에너지가 있는 젊은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서 보았을 때 대부분은 자신의 몸 하나와 반려동물을 건사하기 위해 사는 듯이 보인다. 


 나는 바란 적이 없으므로 포기한 적이 없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이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당연 해지지 않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결혼, 아이 낳기 등이다. 어쩌면 어느 미래에는 취업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 무엇도 당연해해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포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 3포 세대, 5포 세대 N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붙인 어른 들은 그 세대의 허망함을 한 번이라도 생각했을까?


난 연애도 결혼도 집도 차도 바라지 않았다. 애초에 갖고 싶어 본 적이 없다.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고 내 것이 되기를 원한 적도, 내 것이 되지 않아서 불만인 적도 없었다. 고로, 남들은 다 포기했다고 하지만 난 포기한 게 없는 거다. 애초에 원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포기했다고 할 수 있겠나?


그러니 멋대로 내게 포기했다고, 우리 세대더러 포기의 이미지를 덧입히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바란 적도 없는 것을 포기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바란 적이 없지만 절망하지 않았고 똑바로 살고 있다. 애초에 바란 적이 없는 세대, 희망 없고 절망도 없는 무의 세대라고 차라리 불러달라.


생각해본다. 내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내가 포기한 것은 내 의견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 혹은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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