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립 불안과 명절
우리나라는 고립 불안1 지수가 높다. 남들 다 하면 해야 한다. 유행이 잘 돌고 잘 사라진다. 몰개성과 무 신념이야 말로 현대 한국의 종교다. 때와 장소와 주변 사람들에 맞춰 유연하게 스스로를 잘 바꾸는 자만이 살 아 남는다. SNS 친구가 몇 명인지, 얼마나 발이 넓은 지는 한 개인에 대한 큰 칭찬거리다. 대상에 따라 보호색을 바꿀 줄 아는 현대적 인간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때에 따라 자기 몸 색깔을 바꾸려면 개인은 우선 개성을 없애야 한다. 평범함을 최고로 치는 특이한 세계에서 특이함은 욕먹을거리가 된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한 다리를 절고 있는 우리들 ‘레임덕’ 2은 환영받을 수 없다. 그중 연애는 남들 다 해서 해야만 하는 필수과목 중 하나다. 마치 군 미필자처럼, 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자는 은근한 따돌림을 당한다. 연애를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 두 연애를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안’한다는 그의 말은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고 말한다. 어디 문제 있는 것 아니냐고.
세월이 흘러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주제는 결혼으로 옮아간다. 그 나이 먹고도 결혼을 하지 못했냐며 이상하게 취급하거나 결. 못 남녀의 성적 취향, 성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오지랖 발언들을 하기 시작한다. 시대 가 바뀌었다지만 우리의 실 생활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결혼 못하는 남자 여자들은 다자 앞에서 죄인이 되고 만다. 다만 그 연령이 조금 더 상향 조정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고립 불안적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레임덕들이 특히 꺼리는 시기가 있다. 바로 ‘명절’이다.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명절 공포증을 지닌 환자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미혼 젊은이들은 명절을 두려워한다. 물론 젊은이라면 결혼을 했더라도 두려움의 이유가 달라질 뿐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많은 욕망들이 스쳐 가는 교차로 같은 시공간이다. 평소에는 교류도 없던 이들과 갑작스레 만나 서로 압력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견디는 건 정말 어렵다. 이제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닌 이 나라에서 평소엔 거의 볼 일이 없는 친척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 할 말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경전을 벌인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욕심과 희망을, 친척들은 과시욕구를, 자식들은 불만을 표시하는 창구로 명절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각기 다른 욕망과 욕구를 지닌 이들이 한 데 뒤섞여 있으므로 상황은 어지럽게 흘러간 다. 그곳에서 진정으로 솔직할 수 있는 이는 한 가정에 손님으로 찾아온 친척뿐이다. 나머지 각 가정의 당사자 들은 친척이 되어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느라 함부로 심술을 부리지도 못한다.
명절을 맞이한 미혼 남녀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는 단연 취업(직업)과 봉급에 대한 질문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또 하나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참견에 가까운) 질문이 있을 것이다. 두 관문을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면 명절이라는 의례를 잘 통과했다고 할 수 없다.
번듯한 곳, 최소한 남들 이목에 맞춰 부끄럽지 않은 곳에 취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때론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기준에 맞춰 재단하는 것은 가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 르는 크나큰 실수 중 하나다. 자신의 조카가 어떤 전공을 갖고 있는지를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명절이 되면 취업을 했는지 물어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리의 발현인가? 괴로운 젊은이는 매번 자신의 부모에게 괴로 움을 호소했겠지만 그 호소는 전해지지 않을 것이고 명절맞이 음주가무보다 하찮은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명절을 맞은 참견쟁이들은 듣는 이의 사정은 모른 척한다. 역지사지의 사유를 한 번도 해보았더라면 하 지 않았을 질문 폭탄을 던지면서 가뜩이나 괴로운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든다. 이들이 이런 이해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배경에는 세대 간 간극이 한몫을 차지한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아파트, 빌라 등으로 생활환경이 변화하고 핵가족화된 이후, 급격히 이뤄낸 발전은 많은 병폐를 남겼다. 그중 하나가 세대 간의 심각한 간극이다. 한국 전쟁 이후 우리 사회는 약 5-10년을 주기로 하여 정치 성향, 언어생활, 생활 반경, 문화 등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화했다. 그래 서 아직 이 사회에서 세대론은 유효하다.
지금에 와서 확실한 것은 과거 급격히 이뤄진 도시화만큼이나 현재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노령화 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이란 점이다. 노령 인구의 증가와 저출산으로 인해 앞으로 태어나는 세대들의 삶의 질은 갈수록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 나라는 아직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일찍’ 태어난 이들 중 일부는 이 변화에 대해서는 굳게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다. 일명 산업의 역군이던 그들에게는 현대 젊은이의 고생은 아름답기만 하고(아프니까 청춘), 발전으로 인해 망쳐놓은 금수강 산은 자기 알 바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저출산 시대를 맞이한 현재의 어린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기성세대는 어린 세대에게 사과해야 한다. 잔소리가 우선이 아니다.
부모와 친척이 아무리 귀가 따갑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결국 각자가 살아갈 인생이다. 남들과 같아지라 는 잔소리는 어떠한 생산성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달라져야, 서로 다른 것을 잘 인정할 줄 알아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한 노력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 리는 그런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다. 그래서 다리 한쪽이 불편하더라도 내 속도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이 사는 꼴은 외면하며 사는 방법 밖에, 우리 레임덕들은 택할 수 없다.
명절은 허례허식으로 가득 찬 무너진 밥상이다. 나는 명절의 의미는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고 믿는다. 뉴스 속에 등장하는, 해외여행객으로 가득한 명절의 공항과 우리 집의 상다리 부러질 듯한 차례상을 번갈아 보면서 나는 아노미와 괴리감을 느낀다. 해외여행이 유행이긴 한가 보다, 하고 채널을 돌린다.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을 좋아한다. 그러니 나는 홀로 믿는다. 명절은 ‘철 지난 유행’으로 치부되어 몇십 년 안에 그 흔적을 감출 것이라고.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부디 자신보다 어린 친척들에게 친절하여라!
1 고립 불안: 다른 이와 같아지기를 원하는 불안의 형태.
2 레임덕: 원래는 정치용어이나, 여기서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특이점을 지닌 모든 개인을 총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