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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Jan 04. 2019

혼자 쓴 여행

우리가 떠나려는 이유



  내가 느끼기에 11월은 ‘연락의 계절’이다. 사람은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1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려 든다. 11월의 갑작스레 차가워진 공기는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스스로가 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고 후회되거나 매듭짓지 못한 인연에게 연락을 하고, 11월 말에서 12월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만남을 가지려 한다. 그러려면 11월 초부터 중순까지 약속을 잡기 위한 연락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11월에는 의외의 연락이 나를 찾기도 한다. 

  그런 연락들을 피해서, 어쩌면 스스로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사실은 나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어딘가로 답장을 하고 있었다. 혼자 다니는 내내 11월의 연락들에 답을 하며, 모든 게 와이-파이로 연결된 시대에 우리는 왜 떠나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완벽한 혼자가 된다는 것


  보편화된 이동수단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종종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든다. 안전불감증. 사고에 대한 무감각.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을 놓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내게서 새어 나가는 것들이다. 더 이상 많은 것을 기억해두지 않으려는 나의 뇌는 이제 어느 것을 담으려 들 것인가. 무서울 것이 없는 속도의 시대는 두려움에 대한 무감각과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병을 동시에 낳는다. ‘비상구’라는 세 음절의 단어를 본다. 불현듯 탈출하고 싶어 진다.


 혼자인 상태는 대체로 싫지만 종종 제대로 혼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혼자라는 것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무척이나 적기 때문이다. 언제나 온기에 가까이 붙어 있으려는 인류의 습성이 무의식 중에도 늘 나를 지배하고 있다. 언어라는 온기, 서로 말을 알아듣는 사이에서 기대하는 온기가 있다. 그게 없는 나라로 도망을 치려는, 아주 선택적인 사치병은 그래서 발생한다. 완전히 혼자라는 상태에는 상당히 중독적인 데가 있기도 하다.


 합법적 의사불통이 가능한 곳은 늘 매력적이고 종종 두렵다. 못 알아듣는 말들 사이에서 불쑥 뜻밖의 것이 나를 덮쳐 올 것 같다. 그런 종류의 기대가 자주 고개를 들지만 충족되지 못하고 이내 사라진다. 나는 계속해서 환상을 만들어낸다. 내가 만든 환상은 말 그대로 환상이다. 불가능한 환상이 나를 떠나게 했을까. 거리를 걷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기대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지금 시대에 여행의 의미란 이미 변질되었고, 또 계속 변질되고 있다. 낯선 땅의 신비감은 거의 멸종된 미덕이다. 어쩌면 더 이상 여행이 내적인 것에 속하는 시대 자체가 지나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내가 그걸 꼴찌로 알아챈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꾸 의심이 든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행은 세속적이며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전 지구적 상업에 헌신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쉬지 않고,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을 사진을 찍어대고 있다. 사진이 나 대신 기억해 줄 것처럼.


돌아옴을 위한 떠남


 떠남은 떠났을 때의 그 순간 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떠남은 떠났을 때를 위한 게 전혀 아니다. 떠남이란 전적으로 돌아왔을 때를 위한 것이다. 편도가 아닌 왕복 여행이라는 전제 안에서, 모든 출발은 도착 후의 삶을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여행에서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았고 어떻게든 삶을 즐기려 노력했고 의지를 불태웠고 이런 여행 자체의 과정보다는 그 후의 삶의 과정이 훨씬 더 여행을 떠나려는 심리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비 일상과 낯선 것에 가까워짐으로써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하던(그래서 지겹던)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요컨대 돌아와서 먹는 라면 한 그릇이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애써 표출하려 드는데, 그것은 모두 숙달된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 상에 신기하고 새로운 것은 극히 드물고, 미디어에 온 몸을 내놓고 사는 우리는 이미 닳아빠진 감각의 더듬이를 지니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돌아와서의 일상을 일시적으로라도 비 일상화시킴으로써 행복을 얻으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의도치 않은 것들은 모두 행복을 가져다주고, 빤히 알면서 남들을 따라 시도한 것들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또 한 가지, 어떤 이는 타인에게 자랑할 거리 혹은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남의 여행 이야기만큼 지루한 것이 없다. 그런데 나 역시 내 여행 이야기를 한참이나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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