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속1M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핏 Dec 29. 2018

2019, 내 나이가 어때서

익숙해질 만하면 헌 게 되는 나이에 대하여




 올해의 내 나이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이제야 겨우 이 숫자에 익숙해졌는데 또 새로운 숫자를 맞이 하려니 벅차다. 1월 1일 생과 12월 31일 생이 함께 나이 먹는 시스템도 참 어지간히 바뀌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가 왜 마흔부터 세는 나이 셈하는 것을 멈춘 것인지 십분 이해가 된다. 


나이는 매번 새롭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오래 살게 되었고, 조금 늦게 독립하게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에 따라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모든 삶의 대소사가 늦어지거나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식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나이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나이에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부모가 자식 세대에게 전달하는 가훈처럼 시대가 변해도 큰 변화 없이 상속된다. 그래서 신생아 출산율 1명 대 마저 무너진 지금까지도 여자는 20대 후반이 되면 결혼 압박을 받아야 하고 30대가 되면 출산 압박을 받아야 한다. 남자 역시 비교적 늦을 뿐 압박이 시작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나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른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다. 다른 때에는 그럴 일이 없었는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그랬다. 어쨌든 그분들은 주로 50대-60대 초반이었고 더러 70대도 있었다. (선생님들끼리는 각각의 나이대를 두고 5학년, 6학년, 7학년 이런 식으로 불렀다. ) 


 그분들은 나이로만 따지면 은퇴 연령에 가까워졌지만 정신 연령만큼은 청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나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익히려고 했다. 내 나이의 두 배가 넘는 데도 나보다 훨씬 더 열정적인 분들도 많았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점이 있다. 바로 아직도 자신에게 딱 맞는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며 찾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분들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뿐 나와 크게 다른 입장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존재였다. 노화에 따라 배움의 속도가 다소 더뎌졌을 뿐 마음이란 몸이 노화한다고 단 번에 바뀌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이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 한계가 지워지는 순간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끝이라고 선언할 때밖에 없는 것 같다. 흔히 이야기하는 배움에 끝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평생 방황하며 커갈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장년층의 모든 이들이 내가 만난 어른들처럼 아직도 무언가를 배우려 하는 청년 같이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늦둥이의 대학 등록금을 버느라 일에 허덕이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여러 사정에 의해 생활이 완전히 꽉 막혀 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 안팎의 여러 사정들에 의해 큰 한계가 짐처럼 지워지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완전히 노화하는 것 같다. 


기쁘지는 않지만 우리 가장 젊은 날


 늘 지천에 떠 도는 이야기 중에 ‘오늘이 내게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있다. 매번 잊어버리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더 늙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하루라도 몸이 젊을 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는 노래는 젊은 육체에 적합한 일이 노는 것이기 때문에 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런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 바로, 겨우 이십 대 삼십 대의 나이에 ‘난 몇 살이라서 더 이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지 못해’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이다. ‘뭐든 하고 나서 후회하라’는 말은 젊은이에게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책임 질 사람이 생겼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가진 것 없는 청년들까지도 나이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권을 속박하는 것이 답답하다. 그들이 나중에 더 나이 들면 분명히 후회할 일이다. 물론 실패 이후의 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로 이탈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40대가 넘은 나이에 공무원에 합격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분들의 소식 같은 것이 많이 들려오는데, 새로운 인식과 새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은 결국 편견 어린 시선들을 비웃는 도전 정신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나이의 거센 도전으로부터 가장 먼저 벗어나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데 도대체 주위에서 도와주지를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 오빠들은 내 나이에 놀라고, 가족들은 알면서 내 나이를 계속 묻는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뜬금없이 내 나이를 궁금해하며 질문한다. 아마 얼굴에 쓰여있지 않나 보다. 누가 물어볼 때마다 부끄럽게 내뱉던 내 나이는 이제 갔다. 익숙해질 만하면 헌 게 되는 것이 나이인 것 같다. 내년에는 새로운 나이에게 좀 더 잘해줘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