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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핏 Dec 29. 2018

더 이상 괜찮지 않은 젊은이들

안 괜찮다고 말할 때가 왔다

주위 사람들이 하나씩 아프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지 벌써 2년쯤 됐다. 시작은 주위 친구가 갑작스럽게 큰 병을 얻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혼자서 주기적으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친구가 너무 불쌍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점차 시간이 흘렀고 몇 개월에 한 번 꼴로 친구들이 아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병명은 모두 상당히 심각했다. 이제 안 아픈 친구를 세는 게 훨씬 빠를 정도로 내 주위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이런 뜻은 아니었을 텐데, 정말로 아픈 청춘들이다. 이들은 왜 아플까.


#경쟁


우리는 서로에게 인색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서로 비슷한 위치에 속해 있고, 앞으로도 서로 비슷한 위치로 변하고 싶은 동병상련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고 싶어 하는 자리는 늘 작은 구멍을 넘어야 갈 수 있다. 구멍 바깥이 아무리 넓고 광활하다고 하더라도 미세한 구멍 너머로 그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넘어감’은 너무 어렵고 요원해 보인다. 작디작은 구멍에 들어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있는 나와 같은 처지의 인물을 하나 둘 없애거나 무력화시켜야 한다. 혹은 내가 남들보다 엄청난 노력을 하여 남들보다 엄청나게 뛰어나야 한다. 후자보다 전자가 쉽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다. 둘 다 어렵지만 후자는 불가능할 뿐이다. 우리는 용기 있게 포기하여 패자로 낙인찍히거나, 매번 초조해하며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인간에게 인색하게 구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완전한 야인이 될 용기가 없다면 경쟁을 피하고 사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늘 경쟁 중이었다.


#인구밀도


 작은 구멍 앞에 놓인 질펀한 시장 바닥에서 우리는 우글거린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는 너무 시끄럽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아주 가까이에 두면 된다. 너무 가까이에 있는 상대방은 조금도 예뻐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인데 좁디좁은 이 땅에서는 적당한 거리야 말로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사치다. 

 우리가 수용률 2-300프로의 지옥철에 몸을 구기는 것이나 좁은 원룸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결국 경제 논리와 연결된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도서관 독서실에서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는 ‘가까운’ 자들, 그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적정거리를 갖고 있었더라면 미움은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고 싶은 거리를 빼앗기는 순간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결국 스트레스


 예전 젊은 세대에게 미래가 있었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애써 계획하여 가고자 하는 미래의 종착역이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 사이에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이 유행했다.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내일이 없을 것처럼 쓰는 사람만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유행어는 예전에 비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하지 않고 소비하는 젊은이가 많아진 것을 반영한다. 이러한 경향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소소한 행복이 당장 눈 앞의 근미래만을 생각한 훨씬 값싼 선택임을 알지만  지금 그 돈을 안 쓰고 모은다고 해서 유의미한 금액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일단 쓰는 것이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의 상실이 이러한 소비 형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누군가는 그렇게 써제껴 놓고 뭐가 슬프고 힘들어 병에 걸렸냐 말할 수도 있다. 그들이 쓴 금액이 그렇게 고액은 아닐 것이라는 말은 잠시 제쳐두고, 그들이 돈을 써야 했던 이유를 알아보자. 바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장 혈당을 올려줄 달달한 음식과 당장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여행 상품 및 기타 사치로 분류되는 어떤 상품에 돈을 쓰게 된다. 결국 힘들어서 돈을 쓴 거니까 힘들어서 병도 걸리는 것이란 말이다. 사실 소확행은 그 효과 역시 소소하고 미미하다. 눈앞의 값싼 선택은 아주 확실하지만 소소해서 우리의 깊은 병세를 낫게 하지 못한다. 소소한 행복은 금방 휘발된다. 소확행의 뿌연 연기가 사라진 후에 더욱 분명하게 남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 그리고 점차 쌓이는 스트레스다. 


# 미세먼지처럼 조금씩


 이제까지 젊은이들이 아픈 이유를 살펴보았다. 아직 말해야 할 게 백 가지는 더 남았는데 분량 상의 이유로 세 가지밖에 쓰지 못했다. 이러한 수만 가지 이유들이 미세먼지처럼 조금씩 사람의 숨통을 조여들고 있다. 젊은이도 시나브로 아파지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 속에서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대단할 만큼, 악조건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겨울에는 누구라도 좀 덜 아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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