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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순 Aug 08. 2019

지금에서야 느끼는 엄마의 투쟁

홀로 고군분투했을 엄마에게


이깟 것 얼마 한다고 그렇게 쪼잔하게 구니?


 8살 때 들었던 말로, 아직도 생생히 생각난다. 내 포스터 칼라를 빌려가는 언니들에게 "조금만 써"하고 말하며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미술학원 선생님이 저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나중에 채워 넣어줄 거야'라며 덧붙여 말하기도 했다. 아마도 내 모습이 너무나 쪼잔해 보였으리라.' 그깟 것 얼마 한다고', '또 얼마나 쓴다고' 저리 자기 물감을 챙기는지 했을 것이다.


 선생님을 비난하기보다도, 그 당시 서러움이 생각나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없는 형편에 무던히도 노력했다.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후에는 보습학원까지 꾸준히 보냈으니 말이다. 특히, 미술학원은 재료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도 엄마는 나를 학원에 보냈다. 물감과 붓 가격에 놀라고는 했고, 아껴 쓰라는 주의도 주었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인지하던 찰나였고, 엄마의 말을 충실히 지키고 싶었다. 물감 중에서도 가장 비쌌던 포스터 칼라는 더욱 신중히 썼고 굳지는 않을까 열심히 관리했다. 


 그러던 중, 위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언니들이 물감을 푸는 순간, 내 마음도 같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거 비싼 건데.'라는 생각만 자꾸 맴돌았다. 그리고 이는 내 표정과 시선에 고스란히 드러났을 거다. 선생님은 나를 얄밉다는 듯 얘기했고, 언니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괜한 민망함에 얼른 그리던 것을 마무리 짓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내 포스터물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고 지금도 그렇다. 평범한 콩가루 집안인지라 엄마는 비빌 언덕 조차 없었고, 아빠는 친구에게 사기나 당하며 무능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열심히 오빠와 나를 교육시키려 노력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한은 다 해준 것이라는 것을 나는 요즘에서야 더 절실히 느낀다. 엄마는 바쁜 와중에도 학부모 모임에 나와 우리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애썼고, 내가 반장을 하는 날에는 먹을 것을 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의 노력은 우리의 상황과 정확히 반비례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 집은 항상 생활에 쪼들렸고, 집의 평수는 계속해서 작아졌으며, 학교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그 와중에 오빠와 내가 사춘기까지 와버려 총체적 난국이 되었다. 엄마 혼자 마음 추스리기도 바빴을 그때, 엄마는 그 와중에도 우리의 분노와 방황을 모두 감내해야 했다.


 엄마는 쉬지 않고 일했다. 호프집을 운영해보기도 하고, 물류창고에서 일하기도 했다. 추운 냉동창고에서 하루 종일 고기를 손보기도 했으며,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도 했었다. 노래방을 운영하다가 밤낮이 바뀌고 험한 손님들이 많은 탓에 가게를 넘기게 되었고, 매출이 잘 나오지만 어쩔 수 없이 남편 때문에 팔게 되었다는 지인의 말에 속아 치킨집을 하다가 적자를 남긴 적도 있었다. 엄마는 쉽게 상처 받고 일도 잘 못한다. 아줌마들의 텃세와 아저씨들의 노골적인 비난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는 했는데,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아빠가 전혀 엄마의 고생을 헤아릴 줄 모른다는 것.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 준 적 없는 아빠 옆에서 혼자 두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했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은 꼼짝도 못 하고 할머니 옆에서 병간호를 하고 있다. 아직도 하루에 수십 번 아들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할머니 곁에서 말이다. 엄마가 보고 싶지만 할머니가 보고 싶지 않아서 가기가 꺼려진다. 언제쯤이면 엄마의 고군분투는 끝이 날까. 고통의 억겁 속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노동의 가치는 이골이 날 만큼 충분히 배운 것 같은데. 하늘은 엄마가 위인이 되길 바라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핸드폰만 만지다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어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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