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순 Jul 24. 2019

이혼가정 자녀의 딜레마

이혼가정 자녀가 이혼가정에게

 "어떻게 3명이나 이혼을 하냐?"


 사촌언니와 술을 마시던 중 이혼 얘기가 나왔다. 언니 아는 사람 가족은 3명이나 이혼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너무나 웃픈 상황은 여기 있었으니,


 "언니! 셋째 이모, 삼촌, 우리 엄마. 우리도 3명이나 이혼했어!"


 내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하자, 언니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어머, 그러네!' 하면서 같이 웃었다. 다시 한번 반증하는 평범한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셋째 이모는 남편의 도박으로, 우리 엄마는 남편의 폭력과 무능함으로, 삼촌은 아내의 외도로 이혼을 했다. 이혼사유도 참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늦게 이혼한 것이 바로 우리 엄마다. 온갖 고생 다 겪고, 이혼당했다. 아빠의 마지막 선물로.


 내 주변에는 나보다 먼저 부모님 이혼 경험을 앞선 친구들이 많다. 이혼이 정말 많아진 요즘이라 친구들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소식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막상 겪어보니 과거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듯싶었고,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그 덕에 이혼 자녀들끼리는 유대감이 깊어졌는데, 그중에서 웃픈 공통점이 있다.


 부모님 얘기할 때, 거짓말로 지어내게 돼!


 속 얘기를 터놓을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혼 얘기를 자연스레 숨기게 되면서 일어나는 딜레마다. 아빠와 같이 사는 나의 일화다. 가령 이런 것이다. 아빠한테 빨래 문제로 연락이 오면 엄마인 척 받는다던가, 아빠가 설거지를 안 해놔서 친구에게 투덜거리다가도 '엄마가 설거지했대.'라며 말을 지어낸다. 아빠 얘기만 너무 많이 했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엄마와 같이 사는 척, 엄마 얘기를 꺼낸다. 이혼 자녀인 친구들 모두 격하게 공감했다. 엄마와 사는 친구는 여행 가서 친구들이 아빠 선물을 고를 때마다, 괜스레 '나도 사야 한다.'며 넥타이에 관심 있는 척 바라봤다고 한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일은 생각보다 서럽고, 묘한 죄책감을 일게 한다. 이혼이 죄는 아니지만,  뜬금없이 '우리 집은 이혼해서, 아빠 선물 안 사도 돼, ', '우리 집은 이혼해서 집안일을 아빠가 해.'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꼭 속마음을 터놓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기에, 거짓말을 할 때마다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소하게 끊임없이 거짓말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싫어, 마음잡고 이혼 얘기를 말하는 날에는 신경 쓸 것이 많다. 어떻게 말할지를 참 많이 고민한다. 동정받고 싶어서 한 얘기도 아니고, 나 편하고자 한 얘기에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더 싫기 때문이다.


  이혼 아웃(커밍아웃에서 따와봤다.)하는 순간, 얘기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 표정은 비슷하다. 동공이 커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순간적으로 포착된다. 그 후, "그래?"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제를 바꾸는 사람, "힘들었겠다."라며 위로해주는 사람", "내 주변에 많아" 혹은 "헐, 나돈데!" 하면서 갑자기 이혼 얘기로 넘어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가장 힘든 이혼 아웃은 연인이 생겼을 때다. 특히 연애 초! 이혼 가정 자녀의 딜레마 그 자체다. 같이 붙어있는 시간은 많아서 거짓말은 끊임없이 늘어가는데, 나의 좋은 점만 보여주고 싶어서, '이혼 얘기'를 섣불리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혼 가정 자녀인 친구들과 이러한 딜레마에 한참을 공감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제일 본질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즉, '이혼 사유'에 대해 먼저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이혼 사유'는 너무나 다양하지만 한결같이 용납되지 않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러운 비유지만) 곪을 대로 곪은 여드름에서 고름만 빼내고, 여드름 심인 피지는 짜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혼 사유가 곧 우리가 겪었던 가정에 대한 상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직접적인 이혼 사유는 참으로 딜레마다. 거론하는 순간 상처를 불로 지지는 것과 마찬가지지만 말하지 않으면 딱딱하게 응어리진 돌덩이를 마음에 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이 어린 나이일 때, 부모의 이혼을 지켜봤다면 더욱 힘들 것이다. 정확한 부모님의 이혼 사유를 성인이 돼서도 모르는 친구들도 많고, 그 탓에 오해와 추측이 난무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난생처음 '이혼 가정 자녀라는 사실'이 아닌, 우리 집의 직접적인 '이혼 사유'를 고백했다. 이혼 가정 자녀 친구들도 아니고, 글 잘 쓰는 내 대학 동기. 그것도 멀쩡한 정신으로 오전 11시에. 하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한결 가벼워졌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말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깊이 실감한 날이다. 말하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나를 보며, 아직 '이혼 사유'에 대한 상처가 덜 아물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엔 '이혼'얘기를 꺼내기만 해도 눈물이 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혼 얘기는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사유'를 털어놓으라고 감히 추천은 못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고 곪으면 곪을수록 말하기 힘든 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말할 수 없다면 나처럼 글로라도 써서 털어놓기를, 누가 볼까 기록하는 것이 두렵다면 컴퓨터 메모장에 썼다 지워보기라도 하기를 조심스럽게 권해드리고 싶다. 글을 쓰다가 지금의 나처럼 울컥 눈물이 나면, 적어도 아직 상처가 덜 아물었음을 인정하게 되니까 말이다. 잊고 있던, 외면하던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돌덩이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콩가루 집안이 되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