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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홍범도, 카자흐에 영면하다

Pogni, 유라시아 여행 - 홍범도 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by 포그니pogni




홍대장이 가는 길에는 일월이 명랑한데,
왜적군대 가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에헹야


봉오동전투로 유명한 홍범도 장군의 '날으는 홍범도가(歌)' 가사이다. 을사늑약 이후 경술국치 전까지 함경도에서는 이 노래가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대게 우리가 장군에 대해 아는 것은 '봉오동전투', 단 한 가지다. 그렇지만, 그는 실제로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 장군보다 더 큰 승리의 지분을 갖고 있으며 이후로도 끊임없이 연해주 지역에서 무장 투쟁을 했다. 그리고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란 도시로 갔고, 그는 구소련에서 '까레이스끼(고려인)'으로 불리며 고려극장의 수위로 일하다가 허망하게 영면하셨다.


우리 여기 한번 가볼래?


당시 'K-SURE'에서 글로벌 인턴십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현지 한인신문에서 홍범도 장군 관련 글을 접했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한마디를 같이 일하던 친구들에게 전한다. "우리 여기 한번 가볼래?,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의미있는 일 한번 해보자!",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차로 편도 23시간. 5년전 5월 우리의 역사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작'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생각나면 그리고 꽂히면 바로 실행에 옮기면 된다. 고민할 시간에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극복하면 그만이니까.



(좌) 카자흐스탄 침대열차 내부, 1930년대 소련시대 열차다 / (우) 카자흐스탄의 초원은 끝이 없다



뭐 이런 열차가 다 있지?



당황스러웠다. 침대가 아닌 좌석이 없었던 열차 안. 카자흐스탄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열차를 타고 가려면 무려 3일을 기차 안에서 있어야 한다. 2층 침대는 올라가는 사다리도 없고, 화장실에는 배수 시설도 없다. 그냥 싸고 내리면 철로 위로 흩뿌려진다. 그래서 도심 근처에 열차가 도달하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식당칸과 세면실은 언강생심이다. 몸이 찝찝하면 참거나 문 잠그고 컵에 물을 받아서 알아서 씻거나. 다행히 뜨거운 물은 나온다. 현지에서 인기 있는 도시락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본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한편의 청춘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은 흘러간다. 참, 새벽에 Emergency가 발생해서 도심 근처에 도달할 때 즈음 볼일 보다가 현지 기차 관리인이 문을 강제로 개방해서 몇 대 맞은 것은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다. (외국에서 X 싸다가 맞은 한국인은 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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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새벽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역에 도착했다 / (우)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
잘못 찾아간 크질오르다의 어느 공동묘지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새벽 5시 무렵 마침내 크질오르다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이르다. 돌아다니는 택시도 없고해서 무작정 우리는 무작정 오전 내내 돌아다녔다.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시르다리야 강과 국립극장을 돌아보고 식료품점에서 막걸리 대신 보드카와 제사를 지낼 과일을 구입하고 장군의 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동묘지에 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참을 찾아도 안 나오는 것이다.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낯선 도시의 공동묘지에서 방황하던 우리가 신기했던지 현지인 노인 한 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제대로 된 위치를 알려줬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았기 때문에 이런 행운이 오지 않았나 싶다.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이 홍범도 장군 묘
(좌) 장군에게 술 한 잔 올려본다 / (우) 장군 외에도 이름 모를 수많은 고려인들이 이곳에서 영면했다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계봉우 선생의 묘역도 같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홍범도 장군님.



짧은 한마디와 함께 장군의 흉상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벅차오르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잠시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일제의 앞잡이들은 대한민국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장군님은 왜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쓸쓸히 이곳에 영면하셨나요? 마음속으로 많은 질문을 해본다. 삐뚤빼뚤하게 적혀진 흉상의 '홍범도'라는 한글 석 자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약소하지만 헌화를 하고 장군의 영(靈)을 위로하기 위해 술 한 잔 올리면서 제사를 지내본다. 보드카 한 잔을 종이컵에 가득 담아서 천천히 묘역을 돌면서 술을 뿌리는 마음이 무겁다.


제사를 지내고 잠시 묘역 주변을 돌아본다. 이름 모를 수많은 고려인과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이신 계봉우 선생의 묘역도 있었다. 이를 대표해서 계봉우 선생 묘역에서 한 번 더 제를 지내본다. 고향 땅을 등지고 낯선 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망향(望鄕)의 한()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크고 깊을 것이다. 그렇지만,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 2세, 3세들은 스스로를 '까레이스끼(고려인)'이 아닌 '카자흐스탄 사람'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역사의 아픔은 희미해져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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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홍범도로(路) / (우) 홍장군의 생가를 찾기 위해 해매고 있는 우리
홍장군의 생가는 그냥 민가로 바뀌어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이제 생가를 찾아가본다. '홍범도로(路) 10번지', 택시를 잡고 기사와 함께 열심히 돌아다녀도 나오지 않았다. 외국 한복판에 장군의 이름을 딴 도로명이 있는 것이 신기했지만, 신기할 틈이 없이 생가를 찾기 위해 헤맸다. 한참을 찾은 끝에 그 주소를 찾았는데, 생가는 없어졌고 현지식당으로 바뀌어있었다. 개탄스러운 현실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려인 식당으로 가서 국수와 비슷한 현지식 국시를 먹어본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났다. 이날의 경험은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자 순간이었으며, 이로 인해 나는 무진장 단단해졌다.


P.S : 금년 3.1절 행사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가지고 오는 것으로 확정되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잠정적으로 연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sedaily.com/NewsView/1Z04BNGHVL


우리나라 국수와 비슷한 고려인 전통 음식 '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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