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키르기즈스탄 편 #6

Pogni, 유라시아 여행 - 굿바이, 키르기즈스탄!

by 포그니pogni


마지막날 아침, 다시 만난 비슈케크 숙소의 귀여운 강아지



니가 왜 거기서 떨어져????



마침내 키르기즈스탄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그동안의 여정 동안 많이 피곤했는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겨울에 가까워 차가운 아침 공기 때문에 씻기 싫었지만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샴푸 칠을 하려고 잠깐 샤워 호스를 선반 위에 올려놨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호스가 떨어졌다. 분무기라고 해야 하나? 샤워 호스 Head 부분에 있는 부분이 떨어지면서 말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숙소를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퇴실하려고 하는데 숙소 직원이 이게 망가진 걸 발견했다. 아뿔싸. Ben이 우리 모두를 소집해서 누가 부쉈느냐고 물어봤는데, 일단 입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양심이 찔려 나는 자수를 했다. 그냥 진작 말할걸. 아침부터 망가진 호스 때문에 한국 돈으로 약 1만 원을 현지 화폐로 지불했다. 불안하게 아침부터 대체 무슨 일인지.


이번 여행에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망가뜨렸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 에피소드랑 같이 엮여서 친구들이 Mr. Breaker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전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첫 번째는 촐폰아타 리조트 숙소에서 싱가포르 친구와 장난치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렸던 일이다. 특히 카메라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데, 카자흐스탄 출국 2주 전에 샀던 새 장비인데 망연자실했다. 이후 알마티 시내 삼성전자 센터에 갔지만, 내수와 수출용 부품이 달라서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미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현지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와인 따개를 망가뜨린 사건이다. 어떻게 하면 코르크 마개를 따다가 따개를 망가뜨릴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냥 코르크가 너무 안 빠져서 힘을 좀 더 줬을 뿐인데 그대로 따개가 분리됐다. 옆에서 보고 있던 싱가포르 친구 지치엔(男)의 너무 놀란 나라 잃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황당함 그 자체였다. 그러면 그 와인은 어떻게 됐을까? 젓가락으로 쿡쿡 쑤셔서 코르크 마개가 아예 와인병으로 들어가게 해서 그냥 들어간 상태로 따라 마셨다. 마지막 세 번째 사건이 윗 문단에 언급한 샤워 호스 Breaking이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앞으로 무엇이든 조심해서 망가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액땜한 셈 치고 마지막 여행 장소인 알라투 광장으로 가보자.



알라투 광장까지 가는 길, 수도이지만 굉장히 한가한 모습이다.
20141011_114216.jpg
20141011_114504.jpg
알라투 광장의 건물, 광장의 좌/우 건물인데 이 건물에는 기념품 숍 등 각종 상점이 입점해 있었다.



이거, 돌아가기 아쉬운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지만 중앙아시아의 강렬한 햇살이 내 몸을 데워준다. 마치 초가을 날씨 같은 느낌이다. 알라투 광장까지 가는 길은 아주 한산했다. 여기가 한 국가의 수도인가 싶을 정도로 번화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다니는 한낮의 비슈케크 시내 풍경이 나쁘진 않다. 오히려 아쉬운 마음에 눈으로 더 담아두고 싶은 마음뿐이다. 당시에 나는 이런 자연보다 이런 도시 풍경을 좋아했는데, 하루를 더 비슈케크에서 있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어쨌든 메인이 이식쿨 호수였지만 일정에 대한 아쉬운 면이 생각난다. Ben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웅장한 자연도 좋았지만 사실 중반부부터는 비슷한 풍경이 많이 보였고 차량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일정의 절반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쇼핑몰에서 저렴한 가격에 쇼핑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흘러간 시간을.



비슈케크 '알라투 광장'의 마나스 동상과 대형 키르기즈스탄 국기 #1
비슈케크 '알라투 광장'의 마나스 동상과 대형 키르기즈스탄 국기 #2




키르기즈스탄의 영웅, 마나스 동상 앞에서



알라투 광장은 키르기즈스탄의 영웅 마나스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긴 건축물과 분수가 있으며 동상 맞은편에는 '농업부' 관공서라고 구글맵에 표시된 건물이 있다. 좌우의 건축물도 관공서 같아 보였지만, 그곳엔 기념품 숍 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그렇다면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이 숭배하는 마나스란 어떤 인물일까? 현재는 사라진 고대 인도어 '산 크리스트어'로 마나스는 사유(思惟)란 뜻인데, 키르기즈족의 영웅 설화 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마나스가 그들의 바람을 이뤄주는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유란 단어와 연관 지어 보면 '생각하는 대로 실현하는 영웅'즈음 되지 않을까 제 나름대로 해석해봅니다. 우리나라로 역사와 비교하면 고구려 건국 신화에 나오는 '주몽' 설화와 유사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기 장수 우투리'란 설화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비슈케크에 오는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곳인지 동상 주변에는 돈 받고 말을 태워주는 사람도 있고 다가와서 기념품을 판매하려고 붙는 상인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에 넘어갈 제가 아니지. 마나스 동상의 웅장함을 느껴보고자 가까이 가본다. 주인공과 주인공이 타고 있는 말의 당당한 표정에서 초원을 벗 삼아 살아온 키르기즈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또한 가까이 가니까 대형 국기의 크기가 정말 어마어마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부산에서 구서 IC 앞에 대형 태극기보다 더 큰 것 같았다. 키르기즈스탄 국민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이란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기 어려운 요즘 시대에 이에 대한 반성을 해보는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은 아주 대단하고 우리 생각보다 멋진 나라이다.



마나스 동상 정면에 있는 관공서 건물
20141011_114257.jpg
20141011_114855.jpg
마나스 동상의 좌/우 건물과 분수
360도 카메라로 찍어본 알라투 광장 전경



어서와, 기념품 가게는 처음이지?



천천히 광장을 돌면서 이 도시의 마지막을 음미한다. 그리고 일행을 따라 기념품 가게로 들어간다. 생각해보니 외국에 와서 제대로 된 기념품 가게(Souvenir Shop)는 처음 들어가 본다. 비록 수학여행으로 상해를 비롯한 중국 남동부 지역을 갔었지만, 초저가 패키지여행 상품으로 다녀와서 쓸데없는 가게들만 갔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내가 살았던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관광 도시가 아니라서 기념품 가게 자체를 못 봤던 것 같다. 물론 전혀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나~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서 가져가면 하나도 쓸모없는 이 세상에 예쁜 쓰레기들이 여기 다 모여있다니! 그래도 키르기즈스탄을 기억할 수 있는 전통 기념품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여전히 이만한 돈을 주고 기념품을 왜 사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왔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일 저렴한 엽서 세트 하나를 한국 돈 천 원 정도 주고 샀다. 한 세트에 꽤 많은 엽서가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 지인들에게 'I'm back'이라며 하나씩 주다 보니까 내것도 남기지 않고 어느새 다 사라져있었다. 음... 좀 더 사올 걸 그랬나? 이렇게 기념품 하나 사는 것도 아까워했던 나는 이제 해외여행을 가서 기념품을 무조건 사야하는 차이니즈 느낌 나는 한 관광객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분수 주변을 좀 더 빙빙 돌아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Van 기사가 다가온다. 이제 차를 탑승하는 순간 이곳을 올 일은 없겠지?


"안녕, 키르기즈스탄!!", 이 한 마디 외침에는 수많은 뜻이 담겨있다. 정말 행복했다.



비슈케크에서 알마티로 표지판을 돌리고 카작으로 돌아가는 길
We were together. 피곤했지만 즐거운 Midterm Brake Week였다.



집(Home)으로 돌아오는 길



이제 진짜 '집(Home)'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이라니, 벌써 카자흐스탄 KIMEP 대학교 기숙사는 우리에겐 집이 됐다. 등을 기대면 하얀 페인트가 묻고, 공용 부엌의 인덕션을 사용하면 라면 한 개를 끓이는데 30분이 넘게 걸려도 익숙한 집이 됐다. 앞으로 어떤 재밌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렇게 소중한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 돌아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초원길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만 같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한나라 '장건'이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나 수도 장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을 감정이랑 조금은 비슷할까? 다시 넘어가는 육로로 국경을 넘는 과정은 처음과는 다르게 아무렇지도 않다. 그냥 익숙해졌다. 마지막으로 기숙사에 도착하면 방에서 맛있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약속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간다. 아... 그런데 중간고사가 며칠 남았더라? 공부는 좀 해야겠지? 나는 중학교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90% 이상은 하루 전날 벼락치기를 했다. 단기 기억력이 좋은지 성적은 잘 나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어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지? 이런 걱정은 일단 기숙사에서 라면에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털어버리기로 한다. - 끝 -



집을 뒤져보니 당시 찍은 사진을 인화한 엽서가 있었다. 빛이 바랬다는 건 세월이 그만큼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날으는 홍범도, 카자흐에 영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