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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카자흐스탄 편 #9

Pogni, 유라시아 여행 -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었으면 ♬

by 포그니pogni




오늘만큼은 특별한 날이었으면, 일상의 찌든 삶을 모두 날려버리면 ♬



SG워너비의 'Ordinary People'이란 노래의 시작부이다. 새로운 외국 도시 삶의 설렘도 잠시, 익숙하고 심심한 일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사실 유럽이나 동남아로 교환학생을 왔다면 심심할 틈이 없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관광지도 많을 뿐만 아니라 국경도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크지만 인구가 2천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이곳의 일상은 초반부 로맨스가 끝나니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무료해졌다. 게다가 중간고사라는 한차례 폭풍이 몰아친 후라서 더 무료함이 컸다. 게다가 나는 동아리와 종교 활동도 하지 않아서 Refresh 할만한 구실도 없었다.


"오늘 점심, 저녁은 뭘 먹지? 저녁엔 어떤 안주에 술을 마시지?"


맨날 기숙사 방에서 모여서 술 마시고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게다가 다른 교환학생 친구 일부는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 타슈켄트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겨울방학 유럽여행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던 나는 그러지 못하니 무료함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도 마냥 시체처럼 기숙사 침대 위에 누워서 있을 노릇은 아니었다. 그래서 갑자기 침대를 박차고 혼자 기숙사 밖을 나와서 걷기 시작했다. KIMEP 대학교에서 가깝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알마티(Almaty)의 심장부를 향해서 걸었다. 그리고 나에겐 갤럭시 s5가 망가지고 새로 구매한 스마트 카메라란 무기도 시험해볼 요량이었다.



알마티,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 : 가운데 동상이 광장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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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에펠탑을 모방해 건축한 것 같은 탑과 시중 은행 건물, (우) 시청 앞, 휘날리는 카자흐스탄 국기



공화국 광장(Republic Square)을 바라보며



누구든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생각하면서 걷고 싶은 시간이.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 조차도 듣기 싫어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 소리를 크게 키워본다. 사실 이런다고 걱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 하나만큼은 차분해진다. 지금도 나는 갑갑한 일이 있으면 이처럼 이어폰을 크게 틀어놓고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걷고는 한다. 익숙한 Dostyk Plaza를 지나니 금방 공화국 광장에 가까워졌다. 마음이 차분해지니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예를 들어 현지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니 새삼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다.


마침내 공화국 광장이 보인다. 사실 이곳은 광장을 상징하는 자그마한 동상과 에펠탑을 모방한 것 같은 탑이 전부이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알마티 시청, 카자흐스탄 중앙박물관 등 이 나라를 대표할만한 건물이 있으며, 질뇨니 바자르 및 대통령 공원과 함께 몇 안 되는 시내 관광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란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동상 옆 은행 건물엔 '카자흐스탄 2050년, 경제 개발 계획'이란 플랜카드가 달려있다. 역사책 현대사 파트에서 많이 봤던 문구 같지 않은가? 그렇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서 '박정희 前 대통령'이라고 말하며서 그를 롤모델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2050 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독립 후 1990년부터 2019년까지 계속 헌법을 개정하면서 무려 30년 가까이 대통령직에 있었다. 그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구 소련 국가 중 러시아 다음 경제력을 보유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민주화에 대한 압박 때문에 '19년 3월 대통령직에서 내려왔지만, 꼭두각시 대통령을 앉혀놓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어쨌든 국민들 사이에선 경제 발전에 대한 업적이 높게 평가되어 수도 이름도 아스타나에서 대통령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얼마 전에 바뀌었다. 유신과 경제 개발 계획 모든 면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많이 닮아있는 사람이다.


이렇듯 시청 앞 벤치에 앉아서 내 미래를 그려보는 등 혼자만의 사색을 즐겼다. 그리고 석양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향한다. Alfarabi Street를 향해서.



Alfarabi Steeet 가는 길에 보이는 만년설
학교에 있을 때보다 꼭두베(Kok-Tobe) 타워가 더 가까이 보인다
Alfarabi Street의 상징인 건물 전체가 통유리로된 카자흐 금융 단지
아름다운 석양이 알마티 시내를 감싸고 있다


알마티의 과거와 오늘 - Alfarabi Street



가끔씩 택시타고 지나가면서 어렴풋이 봤던 Alfarabi Street에 도착했다. 공화국 광장에서 Alfarabi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이 예술이다. 알마티의 남산타워라고 할 수 있는 꼭뚜베(Kok-Tobe) 타워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이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보인다. 새삼 내가 해발 700m나 되는 고지대 도시에 있단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잊고 살았던 알마티의 아름다움이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첫 날 호스텔에 도착한 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었던 그 풍경이 다시 내 눈앞에 있다.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맨날 보면 지겨워지는 경험',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겐 이 도심의 풍경이 그러했다.


10월에 눈은 내렸지만, 아직 나뭇잎이 완전하게 떨어지진 않았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늦가을. 가을 끝무렵의 풍경이 어쩌면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닐까? 이런 중에 햇빛을 받아 홀로 독야청청하고 있는 건물이 있다. 바로 Alfarabi Street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통유리로 된 빌딩이 모여 있는 금융 단지이다. 이곳의 경제 발전상을 상징하는 곳인데 모순적으로 만년설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자연과 인공이란 단어의 양 끝단에 있는 두 부류같다. 하지만 이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보았다. 수 많은 지하자원과 날로 발하는 경제 브레인의 합작품. 물론 실제로는 '14년 말부터 러시아 루블화 폭락이 일어나고 원유 가격이 떨어지면서 경제가 후퇴하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기숙사로 돌아갈 시간이다. 때마침 석양이 지고 있다. 태양이 떨어지면서 도로 위에는 아지랑이가 피어난다. 이는 나에게 '역동성'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시체처럼 누워만 있지 말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매일 매일 발전해야지'란 다짐을 해본다. 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보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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