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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카자흐스탄 편 #10

Pogni, 유라시아 여행 - Yes, I can!

by 포그니pogni



Yes, I can!


너무 소심하고 까다롭게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지 말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많이 실험할 수록 더 나아진다. (Don't be too timid and squeamish about your actions. All life is an experiment. The more experiments you make the better.) - 랄프 왈도 에머슨



앞선 글들은 교환학생으로 카자흐스탄에 왔는데, 공부한 얘기는 없고 죄다 여행 얘기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챕터에서는 내가 KIMEP 대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수강했고, 어땠는지 솔직한 수강 후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이어질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KIMEP 대학교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Kazakhstan Institute of Management, Economics and Strategic Research", 이 학교의 Full Name이다. 쉽게 말해서 카자흐스탄 경영·경제 전문 대학교이다. 경영·경제 분야에 한해서는 카자흐스탄의 연·고대 수준의 대학교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소득 수준 대비 학비가 비싸서(1학기에 한화 400~500만 원 수준) 현지 부호들의 자녀가 많이 다니고 있다. 또한, 카자흐스탄 지방이나 그 외 국가 가령 타지키스탄과 같은 국가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 경영·경제 분야 리더'가 될 재목들이 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 학교는 한국인 '방찬영' 총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 총장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분리 독립을 하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경제 고문으로서 카자흐스탄에 왔다. 그런데 소련 시절 공산당원 간부 양성 학교가 있던 자리에 경영·경제 전문학교를 설립하기로 확정한 후 고문이 아닌 총장으로서 지금까지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규 학생 중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한국인 학생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되고 있는데, 미국인 교수가 상당히 많았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대학교에 있는 교수를 높은 연봉으로 스카웃 하지 않았느냔 추측이 든다. 또한, 외국 유명 대학교들과 연계도 잘 되어 있는데 여기서 학사 졸업을 하고 영국 등의 국가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이곳 학생들은 영어가 되니 TOEFL 성적만 어느 정도 받쳐주면 충분히 외국에서의 수학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학교 입학 후에는 영어 공부를 등한시했었다. 그 흔한 TOEIC 시험도 회계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한 번만 치렀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취업준비로 진로를 바꾸고 교환학생을 가서 영어로 수업을 듣겠다고? 처음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생각을 바꿨다. "Yes, I can". 출국 전 여름방학 기간 동안 국제여름학교 Buddy 활동을 통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섭다고 회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면 자연스레 영어 실력이 올라오지 않을까?



키맵 대학교 West Gate에 있는 현판
KIMEP 대학교 전경



매스미디어와 사회 (Mass Media and Society)

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 (Business Communication)

인터넷마케팅 (Internet Marketing)

최고경영자와 리더십 (CEO and Leadership)

인적자원관리 (Human Resource Management)



다섯 가지 과목 총 14학점. 수강 신청 전 교수 수업 방식이 어떤지 파악할 틈도 없이 복권 긁듯이 수업을 골랐다. 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매스미디어와 사회', '인터넷 마케팅', '인적자원관리' 강의에 대해서 수강 후기를 남겨보고자 한다. 강의마다 기억에 남는 특징이 있었는데, 먼저 매스미디어와 사회 과목은 현지인 교수가 영어로 강의를 진행했고 현지 정규 학생들과 과제 때문에 협업할 기회가 많았다. 다음 두 과목은 미국인 교수의 수업이었다. 인터넷 마케팅의 경우 학생과 소통을 하면서 강의 진행을 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인적자원관리의 경우 강의식 수업이었는데 미국 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은 아주 정석적인 방식의 수업이었다.



매스미디어와 사회 과제를 위해 현지 전시회에 참석했다.



매스미디어와 사회 (Mass Media and Society)



첫 번째, 매스미디어와 사회 과목에 대한 수강 후기를 시작해 본다. 사실 이 수업을 선택했던 이유는 한국인 교환학생이 많았고 중간고사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출석을 부르면서 교수가 특히 내 이름을 부를 때 발음을 어려워했던 점이 기억난다. 출석부에는 'Seong Seungeun'라고 적혀 있는데 정말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쎄옹~ 슝..균...?!" 매번 출석을 부르지만 매번 발음은 한결같았다. 한국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도 어려운데 얼마나 어려웠을까?


수업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해가며 영어로 소통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고, 특히 교환학생에 대해 과제 조를 짤 때부터 최종 발표까지 많은 배려가 있었다. 또한, 시청각 자료를 많이 활용해서 수업 이해도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교수가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니라서 그런지 알아듣기 용이한 수준의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었던 것도 좋았다. 다만, 교수님이 어쩜 그리 집에 사정이 많으신지 미리 공지 없이 당일 휴강을 꽤 많이 했었다.


이 과목에서 내가 참 부담스러워 했었던 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매스미디어와 관련된 주제로 PPT 발표였다. 아직 영어로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무려 영문으로 PPT 자료를 만들고 발표까지 해야 했다. 당시 세계 뉴스란에서 이슈가 됐던 것이 홍콩의 '우산 혁명'이었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의 의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전혀 다르게 보도하는 뉴스를 비교하는 것으로 주제를 잡았다. 어찌나 떨리던지 그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목소리도 크게 하고 눈도 크게 떴던 것 같다. 그리고 PPT 발표를 마무리하는 멘트로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Hongkong citizen are fighting for the democracy, for precious democracy."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글거리는 멘트였는데, 그때는 영어로 발표까지 끝마쳤다는 것 자체에 취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Yes, I can', 인생은 정말 실험의 연속이다. 그 실험 속에서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사실을 배울 수 있었던 수업이었다.



가을 냄새가 짙게 풍기는 KIMEP 대학교 캠퍼스 內 어느 길
International 학생끼리 조를 짜서 교내 풋살장에서 축구도 했었다



인터넷마케팅 (Internet Marketing)



수업 자체는 정말 재밌었다. 마치 개그맨 유재석처럼 쉴 새 없이 농담과 만담을 하는 미국인 교수의 수업 방식이 정말 흥미로웠다. 그는 Lecturer가 아니라 Talker였는데, 그의 토크 속에는 늘 이 날 수업의 핵심이 녹여져 있었다. 하지만 말이 너무 빨라서 그의 만담을 따라가는데 너무 벅찼다. 게다가 시험 난이도도 너무 어려워서 나중에는 Pass를 못할까봐 걱정까지 됐었다. 그래도 수업 내용은 인터넷 마케팅이란 과목명에 맞게 가령 아마존이 어떻게 회사가 성장했는지, GE가 왜 하향세를 걷고 있는지 등 흥미로운 주제가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 대학교에서는 '교수'는 그 직업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몰라도 모두가 하나같이 굉장히 Heavy한 Lecturer이다. 이 말인즉슨 학생과 소통은 하지 않는단 의미이다. 솔직하게 한국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만족스러웠던 수업은 전혀 없었던 나에겐 이 수업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학생과 소통하면서 수업 내용도 알이 꽉 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준 것만으로도 이 수업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다.



SAM_0171.JPG
카자흐스탄의 겨울, KIMEP 대학교 캠퍼스의 겨울.



인적자원관리 (Human Resource Management)



마지막으로 재학 중에 듣고 싶었지만 늘 일찍 수강신청이 마감되어서 못 들었던 인적자원관리, 일명 HR 수업이다. 이 강의 역시 미국인 교수에 의해 진행됐는데, 그 스타일은 인터넷 마케팅 수업 교수와 반대로 Soft한 Lecturer였다. 헐리웃 영화나 미드에서 봤던 수업 장면에 내가 그대로 들어온 것 같았다. 학생들과 농담은 주고받지 않지만, 강의하는 열정만큼은 최고였다. 우리나라처럼 무작정 일방통행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항상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고 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수업에 교환학생은 나 혼자뿐이었는데, 굳이 나를 지목하여 대답을 종종 유도하곤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정답이 아니야'란 말 대신에 '그 의견도 괜찮은데?'라는 말을 했다. 이런 대답을 하는 선생님 혹은 교수는 내 평생에 처음이었다. 틀렸다고 하지 의견이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교수님 덕분에 수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 그리고 A라는 결과물은 덤이었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던 KIMEP 대학교의 강의. 수강 후기는 여기까지이다.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고 해서 많이 두려웠지만, 나는 해냈다. 여러분도 할 수 있다. 단, 실험하고자 하는 실험 정신만 있다면. - 끝 -




카자흐스탄 유명한 어느 문학가의 동상, 유럽 느낌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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