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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Oct 30. 2020

고등어 케밥, 너를 먹기 위해 이스탄불에 왔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터키, 이스탄불 편 #2

발길을 따라 들어갔던 탁심의 어느 전통시장


세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믿음이다.
-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Edna St. Vincent Millay)


  이스탄불에 오기 전, 종민이의 말에 나는 세뇌되었다.


  "터키 고등어 케밥 미친 듯이 맛있으니까 꼭 먹어야 해!"


  하도 이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런던으로 가는 길에 들른 이스탄불은 마치 고등어 케밥을 먹기 위한 여정 같았다. 얼마나 맛있을까? 수없이 얘기를 들으니 마치 나는 이걸 이미 먹어본 듯 천상의 맛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무조건 먹어야 한다. 비록 페가수스 항공에서의 고된 여정 때문에 현지 케밥을 먹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다행인지 성이 차지 않았다. 이렇듯 여행 일정을 보낼 땐, 강력한 믿음 한 가지가 있어 목적이란 게 생기면 더욱 즐겁다. 내게는 음식이 맛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정적인 여행에 마치 생동감을 불어넣는 향신료와 같은 역할을 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음식 자체가 다양하지 않고, 대부분 느끼한 음식이 많아 의식주 중에서 가장 큰 즐거움인 '식(食)'의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그래서 이번 유럽여행의 모토는 '음식'이었고, 나는 첫 번째 타깃인 고등어 케밥을 먹기 위해 이스탄불에 왔다. 아직 종민이가 말한 곳까진 꽤 많은 거리가 남았다. 그래도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흐린 날의 터키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이동한다.




  이스탄불 도심 전경을 보기 위해 그 유명한 갈라타 타워로 가는 길에 잠시 거쳐간 탁심에 있는 어느 전통 시장거리엔『Turkish Delight』란 터키 전통 과자를 판매하는 상점이 줄지어 있었다. 시식을 해볼 수 있는 것은 덤. 시식을 하고 있노라니 통영 중앙시장 앞에 있는 꿀빵 파는 상점이 떠오른다. 맛있게 회를 먹고 디저트로 달달한 팥이 들어간 꿀빵을 시식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그만한 행복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과자에 'Delight'란 단어를 붙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통영 꿀빵과 다른 달콤함의 극치였는데, 이런 극도의 달콤함에서 터키 사람들은 행복을 느껴 Delight란 영어 단어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 세상에서 먹는 기쁨만큼이나 커다란 기쁨이 어딨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매 순간 음식을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행복한 사람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더욱 행복한 사람이다. 한편으로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을 보면 이런 매일 느끼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먹는데, 반면에 그 사람들은 살려고 먹으니까 말이다. 지금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는 후자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나를 닮아가 전자에 많이 가까워졌다. 그리하여 퇴근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더욱 풍성한 것 같다.



이스탄불(Istanbul)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갈라타 타워(Galata Tower) 내/외부
갈라타 타워(Galata Tower)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꽤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거리를 지나 갈라타 타워에 도착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패딩에 비를 맞으면서 이동했는데, 여행이니까 이마저도 나는 즐거웠다. 사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하면 추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지나가는 탁심 거리에서 타워 표지판을 보고 발길 닿는 대로 가봤다. 목표인 고등어 케밥을 파는 노점까지 가는 길목에 딱 위치해 있어서 들렀다 가기에 정말 좋았다. 입구에 들어가니 많은 관광객이 줄을 서있었다. 별생각 없이 왔지만 1층에 있는 동판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지금 굉장히 역사적인 장소에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이 타워는 무려 비잔틴 제국 시절에 세워져 거의 1,000년 가까이 이곳을 지킨 건축물이었다. 당시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고 하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볼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있는 이스탄불 시내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形勝之地(형승지지) : 지세나 풍경이 아주 뛰어난 땅.


  이런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모스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 귀에 들리는 코란을 읽는 높은 데시벨의 소음을 한꺼번에 느낄 수가 있었다. 갈라타 타워에 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여기가 바로 이스탄불이구나!"


  절로 따라 나오는 감탄사. 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형승지지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만약 날씨가 흐리지 않았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지만 위기를 겪고 있는 터키의 경제 상황을 머릿속에 오마주 해보자면 흐린 날씨와 이곳의 이미지가 매칭이 훨씬 잘됐다. 알라를 믿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 시절을 잊지 못하고 이슬람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의 생각과는 다른 현실. 마치 오스만 제국의 칼날 앞에 쓰러져 갔던 옛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이 오버랩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모르고 해외여행을 온다면 그냥 펼쳐진 풍경이었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짧은 시간 동안 떠올랐다.



고등어 낚시를 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흔한 풍경



  비를 맞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노라니 금방 공복이 찾아왔다. 갈라타 타워는 꽤 높은 고지대에 있었다. 타워에서 봤던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우리의 목표였다. 그곳에 케밥집이 있을 지어니.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멀리 다리가 보인다. 거기서 보이는 것은 다리를 꽉 채운 사람들.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까이 가보니 모두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은  자리에서 고등어를 낚아 고등어 케밥 가게에 생선을 공급하는 강태공들이라고 한다. 응?? 이렇게 경쟁률이 치열한데, 과연 이걸로 먹고살 수 있는 것일까? 오직 이스탄불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렇게 추운 날에 도심 한복판에서 낚시라니, 이것도 보스포루스 해협이 이스탄불 시내 가운데를 관통하니까 그런 것이겠지. 그래도 어획량이 적으면 사람이 모여 있진 않았겠지? 이런 좁은 해협에 매일 단순한 낚시로도 어마 무시한 양의 고등어가 잡힌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는다. 이놈들은 흑해에서 왔을까? 아니면 마르마라 바다에서 왔을까?



음식에 가장 좋은 양념은 공복이고,
마실 것에 가장 좋은 향료는 갈증이다.
- 소크라테스 (Socrates)



  드디어 그놈의 고등어 케밥 느님을 영접할 시간이다. 누군가에겐 고등어 타는 냄새가 비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 공복에 가득 찬 내 앞에서는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난다. 케밥에는 고등어 반마리가 통째로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등어를 빵 사이에 끼워서 먹는 일. 과연 어떤 맛일까? 일단 냄새는 좋다. 고등어 케밥의 조립은 간단하다. 잘 익은 고등어와 구운 양파를 빵 사이에 끼워 넣은 후, 양상추를 올리고 새콤한 레몬 소스와 특제 연한 칠리소스를 잔뜩 뿌린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약 10리라(당시 환율로 약 3,000원)를 지불하고 한입을 베어 문다. 내 머릿속엔 '느낌표' 말풍선이 잔뜩 생겨버렸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음식에 가장 좋은 양념인 공복을 한껏 안고 먹으니 더욱 맛있다. 짭조름하고 매콤한 고등어와 구운 양파의 맛이 먼저 입안을 감싸고 거기에 가득 뿌린 레몬 소스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게 눈 감추듯이 케밥 하나가 사라졌다. 사람마다 느끼는 맛은 다르겠지만, 나에겐 천상의 맛 그 이상이었다. 솔직하게 아까 먹었던 터키 로컬 케밥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고등어에서 이런 맛이 날까? 단돈 3,000원에 이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니 황송할 따름이었다. 카자흐스탄은 내륙 국가라서 교환학생 기간 4개월 동안 해산물은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먹으니 더 맛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떠나서 이스탄불에 여행을 온다면 고등어 케밥은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먹킷 리스트임에는 분명하다. 이제 목표를 성취했으니 본래 목적지 런던으로 가볼까? 벌써 스탑오버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는 게 아쉽다. 어서 사비하 괵첸 공항으로 다시 떠나보자.



너를 먹기 위해 내가 이스탄불까지 왔다!


음식에 가장 좋은 양념은 공복이고,
마실 것에 가장 좋은 향료는 갈증이다. 
- 소크라테스 (Socra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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