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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Dec 09. 2020

영국 여행 가면 적응해야 하는 것들 세 가지에 대하여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영국, 런던 편 #1

런던, 히드로 공항 (출처 : newsroom.ferrovial.com)


 첫 번째 적응해야 하는 것 : 영국식 영어 발음


열정이 식었을 때, 비로소 늙은 것이다.
None are so old as those who have outlived enthusiasm.
-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이스탄불에서 몸은 피곤했지만,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듣자 몸에는 활력이 돌았다. 유명한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과 같이 20대 청춘이었기 때문에 열정이 꿈틀 되며 몸에 활력이 돌았을 것이다. 드라마, 영화에서만 보던 런던에 드디어 입성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공항에는 영국의 관문에 입성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활기가 넘쳤다. 이제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공항의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고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입성하는 절차만이 남았다. 역시나 출입국 관리소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이제 내 차례가 다가왔다. 아래는 기억나는 관리소 직원과의 대화 내용이다.


  직원 : What is your purpose of visiting UK?

  나 : Just travel. 

  직원 : Where is your next city? 

  나 : Brussels! (브뤼셀!)

  직원 : Bristol? (브리스톨?)

  나 : No, Brussels! (아니, 브뤼셀!)

  직원 : Bristol? (브리스톨?)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을 말하는 나와 영국 남서부 지방의 도시인 브리스톨로 이해하는 히드로 공항 직원과의 대화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졌다. 결국 나는 벨기에의 수도에 간다면서 부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나 : Brussels, the capital of Belgium!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직원 : Ah, Brussels! I understood. (아, 브루쎌! 이해했어요.)


  머리를 한 대 때려 맞은 듯한 느낌. 그제야 이미그레이션 직원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의 애매한 발음과 영국 본토의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그냥 브뤼셀의 영어 철자를 그대로 발음했으면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영국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알파벳 철자 발음 그대로 발음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T' 발음을 미국식 영어처럼 약간 흘리듯이 말하거나 묵음처럼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I want to become a doctor.'와 같은 한 문장으로 둘의 차이를 명확히 나타낼 수 있다.


  - 미국식 발음 : 아이 워너 비컴 어 닥터

  - 영국식 발음 : 아이 원투 비콤 어 돜토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이런 사실은 대부분 대한민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 영국 본토에서 들어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영국에 가면 영국 영어에 적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힘겨울 수 있다. Water를 워러라고 발음하지 말고, 워터라고 발음하자. Better도 배러라고 하지 말고, 배터라고 발음하자. 나 역시도 레스토랑에서 습관대로 미국식으로 발음을 굴렸더니 웨이터와 간단한 소통도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고 했던가. 여행을 나처럼 단기간으로 오면 쉽게 바꾸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적응해야 내가 편하다.



런던의 리버티(Liberty) 백화점



 두 번째 적응해야 하는 것 : 나도 모르게 'Sorry'하다


  영어 발음에 이어서 두 번째로 적응해야 하는 것은 'Sorry'라는 단어다. 일본과 영국은 섬나라 민족이라 그런지 비슷한 것이 참 많다고 느꼈다. 대표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 직후 세일 기간을 의미하는 박싱데이(Boxing) 휴일에 맞춰서 여행을 했던 나는 거리에서 수많은 인파들과 길거리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본인들과 비슷하게 영국인들은 옷깃만 스쳐도 'Sorry'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신기했다. 영국에서 1년 동안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생활했었던 종민이에게 물어보니 이것은 영국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라고 한다. 나도 걸어 다니며 이들과 동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Sorry'라고 하지 않으면 동양인인 내가 무슨 해코지라도 당하지 않을까라는 염려 섞인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런던을 여행하면서 하루에 몇 번이나 'Sorry'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살짝 부딪힐 것만 같은 상황이 와도 말할 정도로 입에 붙어버렸다.


  그렇지만, 도버 해협을 건너 베네룩스 3국과 프랑스에 도달했을 때는 달랐다. 길거리를 가다가 부딪히든 말든 그냥 무심히 자연스럽게 지나치는 사람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섬나라와 대륙에 붙어있는 나라 사이의 문화는 확연하게 달랐다. 이원복 작가의 '먼 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유럽의 국가들은 정말 가깝지만 먼 나라란 생각이 들게끔 했다.



 세 번째 적응해야 하는 것 : 여기는 카자흐스탄이 아니야!


  나는 러시아어권인 카자흐스탄에서 반년을 살다가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실제로 일반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아야 생활이 됐다. 식당에서든 마트에서든 어디서든지 말이다. 비록 키릴 문자를 읽을 줄은 몰랐지만, 특유의 적응력으로 교환학생 친구들 그 누구보다 말은 잘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것이 영국 여행을 하며 문제가 됐다. 이것은 발음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도 모르게 Thank you 대신에 Спасибо(쓰빠씨바), Water 대신에 вода(빠다), No 대신에 нет(니엣)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미국 발음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습관의 문제다. 내 생각에는 아예 한국에 있다가 영국에 왔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제2 외국어권에 있다 오니까 더 그랬던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여기는 카자흐스탄이 아니라 영국이다. '제발 영어를 영국인처럼 써보자'라고 이런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되뇌었다.






  여행을 사랑하고 세계여행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이렇듯 타국에서 이방인이 되어 현지인처럼 생각하고 적응하고 하는 것으로 문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 하나의 큰 경험이자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잠시 영국인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책에서나 봤던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다시 시간의 흐름을 쫓아서 히드로 공항 이미그레이션 앞으로 가보자.


  발음의 차이로 인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들고 새벽 1시경에 공항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나는 영국 생활을 했다던 종민이만 믿고 있었는데, 원래 타려고 했던 버스가 끊겨서 어쩔 수없이 그나마 가까운 곳에 정차하는 버스를 탔다. 내려보니 셜록 홈즈의 집이라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런던 도심에 진입했다는 기쁨과는 달리 숙소까지는 무려 '하이드 공원'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유럽 특유의 돌길을 헤쳐나갔다. 겨울이라서 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런던의 거리. 가다가 Pub에서 술에 취해 온갖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던 불한당들을 무시하고 새벽 3시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고단했던 몸을 침대에 기대니 금세 잠들었고, 아침이 밝았다. 이제 진짜로 시작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의 심장 런던 여행이.



런던, 차이나타운(China Town) 근처 어느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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