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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Dec 10. 2020

Are You Chinese?? : 런던 여행의 시작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영국, 런던 편 #2

런던 여행의 시발점, 빅토리아(Victoria) 역
(좌) 빅토리아역에서 먹은 와사비(Wasabi)에서의 한식+일식 퓨전 요리, (우) 빅토리아역 내부



낯선 땅이란 없다. 단지, 그 여행자만이 낯설 뿐이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


  이상하게 여행을 오면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보물섬을 쓴 영국의 작가 스티븐슨의 말처럼 여행자라서 이런 환경이 낯설어서가 아닐까. 새벽 3시도 넘은 시간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잠을 청했지만, 오전 8시 30분 즈음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우리나라와 다른 110V 전기 콘센트도 처음 봤고, 이렇게 좁은 곳에서 샤워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비좁았던 샤워실도 낯설었다. 이스탄불에서 저녁부터 개고생을 시작해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미친 듯이 체력 소모를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잠이 들어서 그런가 평소에 먹지 않았던 아침 식사 생각이 난다. 나의 여행 메이트 종민이 역시 마찬가지다. 런던 여행 계획은 내 사견 없이 종민이가 모두 짰기 때문에 그를 믿고 따라나선다. 물론 사비하 괵첸 공항에 버려진 K군은 없는 사람인 셈 치고 말이다, 알아서 잘 오겠지.


  영국은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종민이는 워킹홀리데이 당시에 대부분 끼니를 TESCO나 자취방 근처 식료품점에 가서 식자재를 사고 직접 요리를 해서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자흐스탄 KIMEP 대학교 기숙사에서는 종민이가 요리를 도맡아서 했었다. 나는 기껏해야 감자 껍질을 깎거나 고기에 붙은 지방을 제거하는 정도? 물론 실패작도 있었다. 예를 들어, 샤프란 세제 맛이 났던 짜장밥이 있다. 어쨌든 그는 영국 생활을 하면서 최대한 외식을 자제했는데, 집에서만 해 먹고살 수는 없으니 가끔씩 나가서 가성비 좋은 음식을 사 먹었다고. 한식 + 일식 퓨전 음식 Take-Out 가능한 와사비(Wasabi)라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있는데, 숙소에서 가까운 빅토리아역 지점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메뉴는 잘 모르겠고 종민이 추천 음식으로 먹었는데, 카자흐스탄 현지식만 먹다가 이것을 먹으니까 개인적으로 눈물이 날만큼 맛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맛을 잊고 살았던 것일까 나는.


  배가 든든해지니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빅토리아역은 런던 여행의 시발점이자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편리한 교통 때문에 여기 주변에서 숙박을 하는 사람이 많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Central Station이라 불리는 곳 주변에서 숙박을 하면 이동 동선을 짜는 것이 편하다. 한·중·일 사람들이 정말로 많이 보였다. 사실 아침 식사를 해결할 겸 런던 여행의 필수품인 Oyster 교통카드를 구매하려고 이곳에 왔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1시간은 기다렸다. Waiting 하는 사람 대부분은 한·중·일 사람들이었고 말이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최초로 경험했던 영국의 상징 2층 버스
피키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광장



  기나긴 기다림 끝에 Oyster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첫 번째 행선지로 피키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t) 광장으로 이동한다. 참고로 피키딜리 서커스 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하면 좋다. 왜냐하면 주변에 차이나 타운, 옥스퍼드 서커스, 트라팔가 광장까지 도보로 이동하기에도 괜찮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로 가도 되지만,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나를 위해서 2층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운이 좋게도 2층 맨 앞에 앉을 수 있었는데, 마치 Hop-On, Hop-Off 관광버스를 타는 느낌이었다. 시야가 탁 트여서 런던 거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먼 나라 이웃나라 책에서 봤던 내용이 기억난다. 영국은 1년 365일 중에서 300일 이상이 흐리다고. 그래서 해가 뜨는 날에는 시내 곳곳에서 웃통을 벗고 선텐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역시나 명성대로 흐린 날씨였다. 이렇게 300일 이상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살아간다면, 정말 우울할 것 같다. 그래도 날씨보다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크리스마스 직후 박싱데이(Boxing Day) 풍경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도착한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 이곳에서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현대자동차'를 광고하는 전광판이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도 가장 번화한 아르바트(Arbat) 거리의 별칭이 LG Street인데, 외국에서 이런 것을 볼 때면 애국심이 끓어오르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껴졌다. 물론 이때는 몰랐다, 내가 자동차 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곤 말이다. 분주한 사람들, 관광객이 아닌 영국 현지인을 보고 있으면 뭐가 그리 바쁜지 발걸음이 빠르다. 흡사 서울 강남의 어느 카페 창가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보기로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Londoner다.



런던, 리버티(Liberty) 백화점 정문
피키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근방 쇼핑 거리



  박싱데이(Boxing Day) 휴일의 런던 쇼핑거리는 분주하다. 11월에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국가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란 세일 기간이 열리는데, 영국령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직후 박싱데이가 이를 대신한다. 나는 다음날 폭풍 쇼핑을 하는 걸로 계획을 했기 때문에 유명한 브랜드 Shop에 가서 열심히 간만 봤다. 그런데, 유럽에서 그나마 겨울이 따뜻하다는 영국인데 춥다. 나도 모르게 섬나라의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느 이름 모를 Shop으로 들어갔다.


  영국인 직원 : Are you Chinese?

  나 : .......................................??

  중국인 직원 : (중국어로 계속 설명을 한다.)


  최소 한국돈으로 1,000만 원부터 시작하는 럭셔리 시계 매장에 들어온 것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중국인 점원이 나를 부자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계속 중국어로 설명을 했다는 점이다. 중국인이 봐도 중국인처럼 생겼다니.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왠지 모르게 꿀리기 싫어서 진짜 부자 중국인처럼 행동했다. 뒤에서 종민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되는 것이 들렸다. 유럽 사람들이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중국인이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했단 사실이 다시금 생각해봐도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알지 못했다. 어딜 가든 중국인이 나를 중국 사람으로 생각했으니까. 아내랑 결혼을 하고 일본, 태국, 북유럽 등 많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최소 한 번씩은 중국인이 다가와 알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말을 거는 것을 본 아내는 그 광경을 너무 신기해했다.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래도 중국 사람 닮아서 득을 봤던 경험도 있었다. 스톡홀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는데, 느릿느릿 업무를 하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 때문에 비행기에 탑승을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앞줄에 중국인이 있길래 당당히 걸어갔고, 도움을 요청하니 중국인인 줄 알고 나를 앞줄에 끼워 넣어 주는 것이 아닌가! 여행 가서 진짜로 별의 별일을 다 겪었다.


  어쨌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다시 거리로 나와 유유히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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