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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라시아 여행기 : 카자흐스탄 편 #3

포그니(Pogni), 유라시아 여행 - 카자흐스탄 시장 편

by 포그니pogni


KIMEP 대학교 가을학기도 개강을 했고, 어느덧

카자흐스탄에 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알마티에서

한국인 KIEMP Regular 학생들이 추천하는 식당

여러 곳도 가봤다. 그런데 외국에 온 기분에 심취해

식비로 돈을 너무 많이 쓰고 다녔다. 그렇다, 이젠

허리띠를 졸라맬 때가 온 것이다. 식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직접 음식을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당시에 음식을 전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오로지 라면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같이 친하게 지내는 교환학생 그룹에는 런던에서의

어학연수 경험을 통해 자취 및 음식에 통달한 친구가

있었다. KIMEP 교환학생 기간 동안 숙소에서 손수

해먹은 음식은 모두 그 친구의 손을 거쳐갔다. 그저

나는 공동으로 해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돈만 내면서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 구경만 했을 뿐이다. 가끔은

고기를 굽거나 야채 손질을 조금 도와주는 정도였다.


아무튼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같이 다녔던 친구들의

주머니 사정도 유사했기 때문에 알마티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질료니 바자르'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또한, 싱가포르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도 동행했다.




여기서 잠깐, 질료니 바자르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질료니'란 러시아어로 초록색을 뜻한다. '바자르'는

시장을 뜻한다. 예를 들어, 그랜드 바자르란 터키의

가장 큰 전통 시장이 있다. 따라서 질료니 바자르란

직역하면 초록 시장인데, 아마도 초록색이라고 하면

신선하고 파릇파릇한 느낌이 떠올라 이렇게 불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질료니'란 말과 같이

'쵸르니'란 단어를 현지 식당에서 많이 썼다. 쵸르니

뜻은 검은색이다. 카자흐스탄 음식은 엄청 기름져서

보통 현지인들은 차를 곁들여 먹는다. 녹차와 흑차가

일반적이라 웨이터에게 '차이'란 단어를 듣게 된다면

질료니와 쵸르니 중에서 하나를 보통 선택하곤 했다.






이제 질료니 바자르까지 걸어가 보자. 현지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걷기로 했다. 알마티

시내를 느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도 가로수가 꽤

많지만 나무가 작아서 그런지 우거진 느낌이 없다.

그렇지만, 알마티 시내에 있는 가로수는 거대해서

숲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로수에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해충을

예방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삼삼오오 걸어간다. 이 날부터 싱가포르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싱가포르 여행 갔을

때도 만났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

나 역시 친구들에게 가이드 역할을 해줬다. 정말로

정이 많고 착한 친구들이다. 카자흐스탄이란 변방

아시아 국가에서 만났던 것이 어디 보통 인연인가.

회계사 시험을 접고 취업 준비를 한다는 생각 없이

좋은 기분으로 알마티 시내를 녹음과 함께 거닌다.

한국에서 트래킹을 종종 하면 물론 좋지만, 아직도

당시 걸었던 자유롭고 상쾌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판필로프 공원 (Panfilov Park), 28인의 전사 기념비>


구글맵을 따라가 보니 판필로프 공원이 나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싸우다가 순직한

판필로프 장군과 28인의 전사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가 있었다. 구소련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웬만한 큰 도시마다 2차 세계대전 때 순직했던

사람들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순국선열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 공원에 꽤 자주

갔었는데, 관광 명소로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젠코브 대성당'과 '악기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판필로프 공원에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길거리 악사가 있었는데,

구경을 하고 있는 우리가 한국인처럼 보였는지

뜬금없이 '아리랑'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 곡을 알았는지 신기했었다. 그리고 음미했다.

이역만리 땅 카자흐에서 아리랑을 듣고 있으니

슬프기도 하면서 감동적이었다. 이곳에 강제로

이주되어 살아왔던 고려인들의 심정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고국에 오고 싶었을까?


<알마티, 질료니 바자르 입구>


마침내 판필로프 공원을 가로질러서 목적지였던

질료니 바자르에 도착했다. 알마티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주말을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방문을 했다. 또한, 구역에

따라 과일 및 채소부터 옷, 주방기구까지 모든 게

다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고 있던 학교 기숙사엔

침대와 책상 말고 아무것도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질료니 방문을 한 김에 웬만한 것들은 다 사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전통시장이라 그런지 가격표가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나는

러시아어를 읽을 줄은 모른다. 하지만 살기 위해

생활 러시아어 Speaking은 할 수 있다. 이때에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필요한 러시아어를 숙지 후

갔다. '에따 도러거!! (Это дорого)' [비싸요!!]

그리고 '니엣!! (нет)' [No!!!]. 두 개 단어 가지고

가격 협상이 됐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더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아 악착같이

두 단어를 외쳤다. 당시에는 숫자를 말할 줄 몰라

러시아어 수업을 듣고 있는 친구가 원하는 가격을

대신 말해줬다. 숫자는 이제 능숙히 말할 수 있다.



이제는 시장에 있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자.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과일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또한, 기념품을 파는 곳도

은근히 많았는데 시내 기념품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금액이 더 저렴했다. 질료니 바자르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기념품은 여기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고기를 파는 상인들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슬람 국가에 돼지고기도

판매하고 있었다. 알마티에는 대략 1,800명의

한국 교민들이 살고 있다. 아마도 한국인들을

겨냥해서 파는 것이 아닐까. 한인마트 대비해

삼겹살 가격이 60~70% 수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삼겹살을 구매했는데 문제는 숙소에서

발생했다. 아무런 손질 없이 삼겹살에 껍데기,

갈비뼈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삼겹살을 봤던

기쁨에 놀라서 그냥 구매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일일이 껍데기와 갈비뼈를 손수 가르고

삼겹살을 먹었다. 게다가 구매한 칼도 고기용

칼이 아니라서 날이 잘 들지 않아서 손질에만

2시간이 걸렸다. 6명이 먹을 거라고 구매했던

고기 양도 어마어마했다. 그 이후로 삼겹살은

한식당 혹은 한인마트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손질을 하고 보니 고기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안주거리로

삼을 수 있는 재밌는 기억이다. 음식 만들었던

얘기를 하니까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일명 '샤프란 짜장밥' 사건이다. 이전에 있었던

교환학생들이 쓰던 식기구를 받아 기숙사에서

사용했다. 어느 날 한국에서 공수해 온 짜장에

당근, 감자 등 넣어서 짜장밥을 먹기로 했었다.

짜장을 요리했던 큰 냄비가 있었는데 검은색의

정체 모를 그을음이 있었다. 수세미로 힘들게

문질러도 그을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가

없이 이 냄비에 짜장을 조리했다. 요리 완성 후

밥에 부어 먹기 시작했다. 첫 숟가락을 뜨는데,

이상한 향이 올라왔다. 나는 짜장의 향이 원래

그런가 싶었는데, 다른 친구도 역시 이 향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 섬유유연제 샤프란의

향기였다. 전에 쓰던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가며

본인이 쓰던 생필품을 한 곳에 모아놨는데, 이

냄비에 섬유유연제가 들어가 그대로 굳었던 것

이다. 그 누가 예상을 했을까? 무감각했던 나는

이미 샤프란 짜장밥 한 공기를 이미 먹은 후였다.



시장에서 필요한 식자재와 물품을 흥정을 하며

사다 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여기서

고려인 상인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 방식대로

만든 한식 같은 한식 같지 않은 반찬도 봤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갑게도 한국식 김치도 팔았다.

일단 한 통을 구매했다. 나중에 먹어보니 한국의

그 김치 맛과 같았다. 또한 한국 라면도 팔았는데

'김치라면'이 저렴해서 대량 구매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니 능숙

하게 흥정을 하고 구매를 하는 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또 내가 큰 손이라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누구보다 많이 샀던 기억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생각하면 내 기억의 프레임에 있는 추억이란

작품인 것 같다. 글을 쓰면서도 당시 생각이 나서

혼자 피식 웃고 있다. 이상으로 카자흐스탄 시장

질료니 바자르 편은 마치려고 한다. 이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카작 이야기를 정리하도록 할 것이다.


- 끝 -


포그니의 유라시아 여행 - 카자흐스탄 시장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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