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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Dec 20. 2020

유럽에서 겨울을 이기는 방법 by Mulled Wine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영국, 런던 편 #5


노팅힐(Notting Hill) 지역 진입하는 거리



She
May be the face I can't forget ♬
- 영화 노팅힐 OST 'She' 중에서


  시간을 되감기 해서 Flex Day 오전으로 돌아간다. 유럽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1999년 개봉했던 영화 '노팅힐(Notting Hill)'을 다시 봤다. 영화의 제목은 실제 런던에 있는 지역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인데, 만약에 영화를 보지 않고 영국에 갔었더라면 재미가 반감됐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런던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영화였다. 물론 20년도 더 지난 영화지만, 다시 봐도 수작(秀作)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리즈 시절에 푹 빠졌다. 둘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영화 속에 나온 촬영지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아서 이날 오전에 가는 노팅힐 동네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다. 특히 영화 초반 휴 그랜트가 이곳의 포토벨로 마켓을 돌아다니는 Scene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을 지도 무척 기대됐다. 이곳에 가기 전에 영화를 보고 간다면 여행의 재미는 두 배 이상이 되니까 꼭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그럼 먼저 노팅힐 서점으로 향해볼까?



그 유명한 영화 노팅힐에 나왔던 서점 1
그 유명한 영화 노팅힐에 나왔던 서점 2 & 3



I'm also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boy, asking him to love her.
난 그저 사랑해달라며 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자일 뿐이에요.
- 영화 노팅힐 中 (휴 그랜트가 운영하는 서점에 찾아온 줄리아 로버츠 曰)


  영국 노팅힐에 오자마자 처음으로 서점을 방문한 이유는 바로 위의 명대사가 나오는 Scene 때문이었다. 별 볼 일 없는 남자와 톱스타 여배우의 로맨스 이야기라는 조금은 올드한 설정의 영화지만, 줄리아 로버츠가 이 대사를 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이 씬이 지나가고서 잠시 스페이스 바를 눌러 영상을 일시정지시키고 곰곰이 서점 씬의 그 느낌을 되짚어 봤을 정도였다. 당시의 기분을 살려서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서점으로 들어가 본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였다. 영화 속 앳된 두 주연배우 얼굴 사진과 노팅힐이란 팻말만이 이곳이 촬영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부탁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마치 그녀가 여주인공인 마냥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동안 서점에서 책 구경을 시작했다. 영화 촬영지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외국 서점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도 책을 골라본다. 마치 휴 그랜트로 빙의된 마냥 진지하게 책을 한 페이지씩 넘겨 본다. 그리고 결국 영화로도 개봉된 고전 소설 아이언 마스크(Iron Mask) 책 한 권을 구매했다. 읽기에는 두꺼워서 지금은 집의 인테리어 소품 역할을 하고 있다. 왠지 노팅힐 서점에 들어가면 책을 사고 싶어 진다. 분위기에 취해서 한 권 정도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은 활기가 넘쳤다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Portobello Market) 인생 첫 Mulled Wine



겨울을 이겨내는 특효약
멀드 와인(Mulled Wine) / 뱅쇼(Vin Chaud)


  겨울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사람들이라면 마셔봤을 멀드 와인(Mulled Wine)과 뱅쇼(Vin Chaud). 영국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전자를, 프랑스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후자 단어를 사용할 텐데. 결론은 두 개는 동의어다. 괜히 어쭙잖게 이런 단어를 가지고 여행 부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영어와 프랑스어 발음의 차이일 뿐. 레드 와인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데웠을 뿐인데, 도대체 이것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을까?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에 진입했다. 이 거리에서 우연히 일정이 맞아 마주쳤던 카자흐스탄 한국인 교환학생도 있었다. 역시나 세상은 좁다. 그리고 아침이라 그런가 꽤 쌀쌀하다. 런던의 겨울은 바람이 살벌하게 불어서 살을 아리게 하는 것 같다. 그러던 중에 나를 강하게 끓어 당기는 냄새에 이끌려 그 앞으로 갔다. 바로 멀드 와인을 파는 노점이었다. 단지 와인을 데운 것일 뿐인데, 러시아 사람들이 보드카를 마시며 체온을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감기 예방과 체온 유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즐기는 음료인데 언어별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제 종이컵에 담은 따뜻한 와인을 마셔볼까? 아침부터 알코올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는 것이 생소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어남을 느꼈다. 계피와 각종 과일이 들어간 것 같았는데, 와인의 진한 향과 맛이 내 혈관 모두를 자극해서 몸에 발열이 되면서 에너지가 생성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종류 불문 음주를 사랑하는 내게는 Paradise와 같은 순간이자 유레카였다. 그날부터였다. 어디를 가든 매일 멀드 와인 한 잔씩은 마셔줘야 직성이 풀렸다. 생각보다 따뜻한 기운이 오래가고 여정을 덜 힘들게 하는 육체적인 효과도 있었다. 겨울 유럽에서는 이것을 무조건 마셔줘야 한다.



먹거리, 기념품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 캠든락 마켓(Camden Lock Market)
(좌) 캠든락 마켓 진입로, (우) 마켓 안에 있는 충격적이었던 성인용품점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 크리스티안 바너드(Christiaan Barnard)


  와인 버프를 받아 힘을 내서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국제시장과 같은 캠든락 마켓으로 향했다. 이민자가 많은 영국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일단 전 세계의 모든 음식이 있었다. 이들의 음식을 저렴하게 먹어볼 수 있는 것도 이 마켓의 장점이었다. 그리고 기념품도 어찌나 시내 대비해서 저렴한지 시내에서 Flex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게에 들어가면 쉽사리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시내 대비 저렴하다지만 그래도 영국은 영국 물가였다. 또한, 이곳에는 CyberDog이라는 초대형 성인용품점이 있었는데, 당시에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성인용품점 자체를 처음 가봤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을 둘째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슴없이 도구가 괜찮은 지에 대한 얘기를 계속 나누고 있는 게 신기했다.


  캠든락 마켓에 붐비는 사람들 사진을 보니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거리가 텅 빈 것과 대조가 된다. 언제 다시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 없이 전 세계에서 날아온 사람들이 용광로처럼 섞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찾아올까?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오늘 하루도 지나간다. 이런 고난이 지나 다시 일어나 전 세계적으로 여행 붐이 재차 일어서 누구나 행복하게 세계여행을 쉽사리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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