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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ul 03. 2021

모든 룩셈부르크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아는 건 아니야!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룩셈부르크 편 #4

룩셈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만찬



  12월, 차디찬 룩셈부르크의 겨울밤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다. 오후 5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해는 저 멀리 뒤편으로 넘어갔다. 오늘 하루 보크(Bock) 포대부터 시작해서 나름대로 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룩셈부르크 여행도 끝이 보인다. 오기 전부터 '1박 2일 일정을 굳이 룩셈부르크를 끼어 넣어서 잡은 것이 잘한 일이 맞을까?'란 의문이 항상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룩셈부르크를 여행하고 내가 내린 결론은 '50:50, 반은 잘했고 반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잘했다고 생각된 이유는 전혀 내가 이번 유럽여행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아름다운 산악지대 + 설경'이다. 그때 당시 봤던 풍경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날 정도로 멋진 순간이었다. 반면에 아니다고 생각된 이유는 가장 보고 싶었던 아돌프 다리도 공사 중이었고 생각만큼이나 볼거리는 많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돌프 다리를 찍고 Eye Shopping을 하며 중심가를 하릴없이 돌아다닐 때, 약간 뭐 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베네룩스 3국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1박 정도는 저렴한 숙소에서 머물며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 유럽여행 일정을 길게 잡았을 때 말이다.


  어쨌든 이대로 유스호스텔 숙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밤이다. 역시나 메가버스를 이용할 때처럼 프랑스 파리로 가는 TGV도 가장 최저가에 예약을 해서 새벽에 룩셈부르크 중앙역을 출발하는 것으로 예매했다. 숙소가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돌아가면 다시 나올 수도 없다. 어떻게 할지는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해보기로 한다. 점심은 햄버거, 저녁은 피자 + 파스타. 오늘은 인스턴트 음식 잔칫날이다. 카자흐스탄에서도 음식들이 너무 느끼해 1~2주에 한두 번은 꼭 시내 한식당을 찾아갔는데, 유럽에 온 지 며칠 지나니까 이제 슬슬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딱! 나온 파스타와 피자를 먹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이유는 역시나 말도 안 되게 뛰어났던 맛 때문이다. 크림을 싫어하는 내가 크림 파스타를 싹싹 긁어먹고, 오랜만에 도우 굵기가 큰 미국식 피자를 입에 무니 절로 흥이 나는 것이다. 겨울 유럽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이 '추위'라고 생각한다. 추위 때문에 여행이 어렵지만, 반면 추위 때문에 이렇듯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먹는 음식은 실내의 포근함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진다. 이내 허기가 채워지고, 맥주를 들이붓고 있으니 잠시 우리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짧은 시간 생각에 잠긴다.



밤의 아돌프 다리 풍경



그냥.. 그냥 아쉬워서 다시 아돌프 다리로 가야겠어.



  우리 4명의 침묵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을 정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내 머리에선 그냥 뭔가 오늘의 여행이 자꾸 아쉬웠다. 비록 내가 상상하던 화려한 룩셈부르크의 야경은 없겠지만, 그냥 그렇게 가기에는 아쉬워서 다시 아돌프 다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행들을 딱히 설득할 것도 없었다, 그냥 그날의 분위기는 그랬으니까.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그렇게 꽤나 긴 시간을 걸어서 다시 룩셈부르크 랜드마크, 아돌프 다리 앞에 섰다. 역시나 오길 잘했다. 다리 조명은 '공사 중'이라는 천막에 가려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런 것이 유럽 감성인가?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숨만 쉬고 주변 풍경을 바라만 봐도 좋은 것. 이런 게 유럽 감성이라는 것을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 결혼을 하고서 여름휴가로 북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 당시에 갔었던 서유럽, 동유럽 국가 대비해서 분명 '소박'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풍부한 볼거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냥 아침에 푸르른 잔디밭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먹는 기분.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한 곳이 바로 유럽 대륙이 아닌가 싶다.  「Stare at : ~을 응시하다, 빤히 쳐다보다」,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빤히 앞에 있는 주황빛 불빛을 쳐다만 봤다. 



룩셈부르크 중앙역 (Central Station)
조용한 밤의 룩셈부르크 중심가



Taxi, Let's go to the youth hostel of Luxembourg!!



  그렇게 중심가 주변 도로에서 택시를 붙잡았다. 깔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털썩 택시 자동차 시트에 얼은 몸을 뉘었다. 택시 기사에게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로 가주세요!"라고 영어로 말했다. 어제 벨기에와 오늘 하루 종일 룩셈부르크에 있으면서 영어만 사용할 줄 알아도 여행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순간 슬몃슬몃 이상한 택시 內 분위기가 감지됐다. 'Oh, Shit!',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어려운 단어도 아니고 '레츠고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이라고 했을 뿐인데, 전혀 알아듣질 못한다. 젠장! 이 룩셈부르크 택시 기사 아저씨는 전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이 얘기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너무 답답해서 구글맵을 보여주자, 그제야 이해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데, 이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젠장할!!! 왜 이 택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건데????



  잠시 동안 답답해 미칠 것만 같던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차창 밖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구글맵을 연결해서 켜보니 숙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니, 전 세계 1인당 국민소득(GDP)이 $10만이 넘는 잘 사는 나라의 시민이 지금 Asian이라고 무시하고 택시비 사기를 치려고 그러는 거야?"


  이런 말까지 서로 주고받고. 어딘지도 모르는 룩셈부르크 땅에서 갑자기 혼돈에 빠진 우리들. 점점 멀어지고 있어 일단 택시를 세웠다. 우리는 룩셈부르크 유스호스텔라고 가자고 했고, 알겠다고 해서 믿고 왔는데 왜 여기로 오냐고 종민이가 영어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레츠고도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만 쓸 줄 아는 택시 기사에게 무슨 답이 돌아올까? 너무 황당하고, 열 받아서 그냥 택시에서 내려버렸다. 황당함 그 자체, 그리고 여기서 깨달았다. 영어로만 안 되는 경우도 있으니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필수적인 문장을 그 나라 언어로도 알고 가야겠다고. 택시에서 내려 영어를 알아듣는 택시 기사가 있을 것만 같은 룩셈부르크 중앙역으로 30분도 넘지만 걸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안전하게 숙소로 도착했다. 돌이켜보니 그 택시 기사는 우리가 아시안이라고 무시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당시 룩셈부르크에 'Yours Hotel'이라는 곳이 있던 걸로 구글맵에 잡혔다. 유스호스텔을 유어스 호텔로 알아들었을 뿐, 아니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모든 백인 사람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착각, 이날의 경험으로 확실히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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