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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ul 05. 2021

당신이 생각한 파리는 어떤 모습인가요?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프랑스, 파리 #1

룩셈부르크 중앙역 (출처 : 위키백과)



TGV 좌석에 앉는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20XX년 12월 31일 이른 새벽, 룩셈부르크 보크(Bock) 포대 주위를 맴돌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몸을 일으켜본다. 오늘은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는 날이다. 런던 - 브뤼셀 - 룩셈부르크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유럽 대륙으로 온 지 이제 일주일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새벽 6시 파리 行 TGV 기차를 예약했고, 오늘은 어제의 영어 못하는 택시 기사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유스호스텔 직원에게 대신 택시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웬만하면 알아듣겠지만, 그래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가져온 짐을 한가득 트렁크에 싣고 룩셈부르크 중앙역으로 향한다. 비록 아직은 깜깜한 새벽녘이 긴 겨울이라서 온전히 도심 풍경을 차창을 통해 느끼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창밖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진짜 이곳에 온 것이 맞는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에 취했다.


  정말 다행히 중앙역에서는 아무 일 없이 TGV에 올라탔다. 그동안 가격을 이유로 메가버스만을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좌석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여기에 앉는 순간,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목적지가 명확'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버스를 타고 국가를 이동할 때에도 목적지가 적혀 있지만, 사실 정확하게 어디서 내려주는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창가에 기대어 찌들어 자다 보면 새벽에 버스 기사가 도착했다고 다 내리라고 외치면 그제야 도착했음을 깨닫고, 짐을 꺼내어 구글맵을 켜고 한동안은 숙소 위치와 비교해 현 위치를 가늠한다. 그렇지만, 기차처럼 명확하게 'ㅇㅇ역 하차'란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미리 나의 동선을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라 훨씬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얼마나 편안했을까? 그렇게 언제 곯아떨어져 버린지도 모른 채 잠에 빠져 들었다.



[좌] 파리 TGV 지상역 (출처 : flickr.com) / [우] 파리 지하철 풍경 (출처 : 위키백과)



엇, 이건 무슨 냄새야???



  어느새 파리 역에 도착했다. 당시도 그랬지만 여전히 EU 가입국 간 이동할 때 여권 도장을 찍지 않는 것은 적응이 안 된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달리 느껴지는 파리의 아침 공기, 대도시답게 공기의 흐름도 사람들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체감된다. 그리고 그냥 서울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려 해운대로 이동하듯, 물 흐르듯이 TGV 역사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제 숙소인 파리의 어느 한인민박으로 이동할 차례, 지하철역에 들어갔다.


  가볍게 지하철 티켓팅을 하고 숙소로 가는 방향 플랫폼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이 있던 일행 모두 코를 손으로 움켜쥔다. 도대체 무슨 냄새지? 마치 하수구 속으로 들어온 듯 찌린내가 진동한다. 원인을 찾았다, 바로 역에서 진 치고 있는 노숙자들. 서울역 노숙자 냄새에도 나름 익숙해진 코인데, 이건 진짜 참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없는 지하철역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저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니까 상상 속의 파리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여기도 빈부격차가 심한 수많은 전 세계 대도시 중에 하나란 사실을 깨달았다. 화려한 랜드마크 가령 에펠탑과 개선문 같은 건축물에 가려져 있는 매캐한 냄새도 파리였다. 어찌나 그 냄새가 지독한지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냄새가 아스라이 코에 닿는 것만 같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파리가 어떻든지 일단 지하철역에 들어서면 좋은 생각을 갖고 왔다면 산산조각 날 것이 명약관화하다.



파리 한인민박 숙소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그래, 이게 내가 생각했던 파리의 모습이었어!



  그래도 지하철 내부는 다행히 평화로웠다. 우리나라 지하철 모습과 다른 점은 뭐가 있었을까? 일단 기억에 남는 풍경은 패셔너블한 중년의 파리지앵들. 외모를 떠나서 그들의 중후한 분위기에 맞춰 입은 옷이 너무 멋있는 것이 아닌가! 수없이 왔다 갔다 했던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매일 봤던 우리네 중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모습은 우리나라처럼 공간 활용의 극대화를 위해 하나의 긴 의자가 출입문 사이 간격을 두고 일렬로 배치된 것이 아니었다. 마치 무궁화호 열차처럼 의자 좌석이 2명씩 앉을 수 있게끔 지하철이 가는 방향으로 앞을 보고 배치됐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지하철이 단순 시민들의 교통·운송수단이 아니라 도심 여행을 하는듯한 기분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예 서울의 지하철 모습과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었을까? 정답은 No다. 옆에 어떤 사람이 있든지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똑같았다.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대도시의 삶이 얼마나 피로한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느꼈던 순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도시에서의 삶이란 만만치가 않다. 


  노숙자들 찌든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어느새 지하철은 숙소가 위치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파리 한인민박은 시내 아파트를 쪼개어 방에 2층 침대를 갔다 놓고 도미토리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17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나 싶었지만, 이내 17층에 내리니 있는 한인민박 현판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런던, 브뤼셀, 룩셈부르크에서 저렴한 호스텔 도미토리만 찾았던 우리가 파리에서 한인민박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한식 제공'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를 한식으로 먹고,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라 근처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아 주인장이 '야간 와인 파티'까지 제공하는 나름대로 풀 패키지 상품이었다. 와인의 본고장 파리에서 즐기는 와인 파티라니! 그리고 짐을 맡겨놓고 잠시 거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되찾고, 창가 쪽을 바라봤다. 이런!!!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이게 바로 내가 상상했던 파리(Paris) 그 자체야!!!, 너무 환상적이잖어!", 지하철역의 지독했던 썩은 냄새는 이 미친 View로 인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사건사고 많았던 새해 전야 파리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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