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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Jul 07. 2021

공짜가 좋은 게 아니야!(파리에서 연말연시 무료인 것)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프랑스, 파리 #2


파리의 지하철 (출처 : 위키백과)



  한인민박에서 환상적인 도심 풍경을 보고, 본격적으로 12월 31일 파리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늘의 여정은 『루브르 박물관 - 샹젤리제 거리 - 에펠탑 - 센 강 - 노트르담 대성당』이렇게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촬영하듯 최대한 대중교통을 적게 이용하면서 파리를 돌아볼 예정이다. 날씨도 갑자기 겨울에서 봄이 되었다. 현재 온도는 영상 11도, 한낮에는 15도까지 올라갈 예정이란다. 그런데, 연말연시에 파리에서는 관광객 포함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것들이 있었다.


연말연시, 파리(Paris)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것들

1.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2. 미술관
3. 박물관


파리의 시내버스 (출처 : eurocheapo.com)

  먼저, 대중교통이다. 유럽여행하면서 생각보다 높은 대중교통비에 놀라곤 한다. 특히 런던의 지하철비란 오이스터 카드(Oyster Card)가 없었으면 교통비로만 진짜 하루에 한화로 약 2만 원씩은 나왔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대중교통 무료 제공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파리는 뉴욕만큼이나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도시 중에 하나이며, 아프리카·남미·아랍권·동남아 등 수없이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다. 돈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 못하는 사람도 많아 무료 제공되는 시기가 오면 소매치기 등 온갖 범죄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발생된다고 한다. 그래서 파리 한인민박 주인장은 웬만하면 대중교통 무료 행사가 17:00부터 시작되니 그전에 숙소에 들어올 것을 추천했다. 소매치기는 대개 아프리카 이주민 혹은 집시 민족들이 아시안(Asian)을 주로 타깃으로 삼으며, 평소에도 소매치기가 극성이지만 이날은 진짜 십중팔구는 당하고 숙소로 들어온다면서 말이다. 나는 실제로 아침에 숙소로 오며 지하철역의 무서운 행색의 노숙자를 먼저 봐서 그런지 수긍이 갔다.


무법천지, 눈 뜨고 코 베였던 파리의 지옥철 속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 중에 12월 31일 밤의 파리를 느껴보고 싶다며, 나중에 에펠탑까지 갔다가 저녁 식사를 숙소에서 하고 기어코 나간 친구 2명이 있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무법천지를 경험하고 왔다며, 지하철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지금부터는 얘기를 듣고, 그걸 재구성한 것입니다.)


  목적지는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에펠탑과 개선문 일대는 위험할 것 같아서 그나마 숙소와 가까운 노트르담으로 향했다. 역시 대중교통 무료 행사가 시작되니, 출퇴근 시간 서울의 지옥철을 경험하고 있는 마냥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에 올라탔다. 연말 분위기에 취해서 그런가?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이미 술에 만취해 비좁은 지하철에 탑승한 사람도 곳곳에 있었다. 올라탄 지하철에 아시아인이라곤 우리밖에 없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만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런데 조금 멀리서 아스라이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온다. 설마 지하철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인가? 아니었다, 연기는 맞지만 담배와는 다른 '마리화나' 향이 나기 시작했다. 키가 2m는 돼 보이는 울그락 불그락한 흑인 남성이라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고, 칸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콜록거리고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역, 이미 꽉 찬 지하철에 대규모 사람들이 밀려 들어온다. 내부는 그렇지 않아도 좁은 지하철에서 안으로 더 밀려나니 개미지옥과 같았다. 친구 한 명은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한 명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지하철을 탔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긴 손을 뻗어 핸드폰을 그대로 힘으로 뺐어가는 것이 아닌가! 외침도 전혀 소용이 없다, 아무도 아시안 한 명의 소리를 그 지옥에서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눈 뜨고 코 베이는 찰나, 다른 친구의 뒷주머니가 허전했다. 핸드폰에 시선이 쏠린 사이에 그대로 누군가 지갑을 털어간 것이다. 한 명은 휴대폰, 다른 한 명은 지갑을 그대로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다. 12월 31일 밤의 파리 낭만을 즐기려고 했을 뿐인데, 범인을 잡을 수도 없고 허무했다.


  그렇게 노트르담 성당으로 간다던 일행 두 명은 '혼'이 털려서 돌아왔다. 아직 남은 일정도 많은데 각각 휴대폰과 지갑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핸드폰을 잃어버린 친구는 당장 다음날 새벽에 터키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데, 한인민박 주인장의 경고를 흘려들었다가 봉변을 당했다. 여행지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을 누굴 탓할까? 이처럼 연말연시 파리는 관광객, 특히 한·중·일 아시아인들에게는 정말 위험한 도시라는 사실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이미 와인에 취해 뻗어서 다음날 아침에야 듣게 됐다. 인생에서 몇 번이나 올까 하는 유럽이지만, 자기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이방인 신분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나는 결코 위험한 시간, 위험한 곳에 절대 가지 않았고 지금까지 25개국을 다니면서 다행히 별 일 없이 재밌게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르쉐 미술관 Musee d'Orsay (출처 : 트립 닷컴)

  파리에서 연말연시 무료로 제공되는 것, 다음은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최초 대분류에는 따로 분류했지만, 크게 보면 비슷하기 때문에 한 번에 묶었다. 파리 여행을 준비하면 다 알게 되는 오르쉐 미술관(Musee d'Orsay)과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군데를 모두 들어가지 않았다. 12월 31일 ~ 1월 1일이라는 1박 2일 일정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까웠을 뿐만 아니라 지난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관광하며 역시나 미술관·박물관은 내게 만족스럽지 않은 여행지란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찬양하는 어느 블로그의 후기를 봐도 경험상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여행 방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다른 것일 뿐인데, 틀렸다고 너는 이것도 못 보고 왔냐는 등 쓸데없는 여행 부심이 있는 사람들을 가끔 보면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오히려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던 베르사유 궁전이 조금 아깝지 오르쉐나 루브르를 못 가서 아쉬운 것은 지금도 없다.


  그리고 설사 무료로 개방된다고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기는 정말 어렵다. 평소에도 입장하는 줄이 긴 것으로 소문난 루브르 박물관인데, 이날 역에 내려서 와보니 무료입장 소문을 듣고 몇 겹으로 줄을 섰는지 정말 그 광경이 어마어마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몇 시부터 와서 줄을 서서 있는 것일까?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서 모나리자 그림을 보는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앞서 언급했듯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부분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기다릴 시간에 1분이라도 더 걸으면서 밖에서 아름다운 파리 거리를 느끼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브르에 공짜로 들어가고 싶다면, 나중에 후기를 꼭 읽어보고 시간 계산해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쨌든 나는 지금 이 순간 루브르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어디 걸어서 샹젤리제를 지나 에펠탑까지 가볼까?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와는 달리 눈부시게 빛나고 따뜻했던 태양, 그 속으로 걸어가 보자.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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