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그니pogni Aug 31. 2021

어느 새해, 불타지 않은 노트르담에서의 추억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프랑스, 파리 #5

20xx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 센 강의 아침 풍경
(좌) 다시 만난 카자흐스탄 KIMEP 교환학생 UNION / (우) 퐁네프 다리 근방의 걸려 있는 사랑의 자물쇠들



Hello, Bro.!!



  20xx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12월 31일 밤, 휴대폰을 읽어버린 가영이는 다음 행선지인 터키로 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새벽에 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자기도 모르게 슬럼가 근처로 가서 큰 일 치를 뻔했다고. 그리고 나와 종민, 동욱이는 밤새 한인민박에서 펼쳐진 무제한 와인 파티 때문에 숙취가 심한 상태였다. 무슨 와인을 병이 아닌 5L짜리 생맥주 통 같은 케이스에 들어 있던데, 태어나서 와인을 마시고 취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역시 와인의 나라라고 자부할만한 Class였다. 그리고 새해 아침, 별도로 여행 루트를 짜서 이동하고 있던 동건이와 Join 하는 날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퐁네프 다리 앞에서 만났다. 맨날 카자흐스탄 KIMEP 대학교 기숙사 안에서 보던 사이었는데, 일주일 정도 각자 일정에 맞춰 유럽여행을 다니다가 만나니까 무척 반가웠다.



연인의 다리,
퐁네프(Pont-Neuf) 다리에서



  일단 다음 행선지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을 가기 위해 같은 시테(Cite) 섬 끝자락에 있는 퐁네프(Pont-Neuf) 다리 앞에서 만났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퐁네프의 연인들의 촬영지라 남산타워처럼 철조망에 자물쇠가 걸린 것은 알고 있었다. 나도 서울에 살면서 모태 솔로였을 때는 자물쇠를 채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마치 첫 연애가 영원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입대를 하면서 이게 부질없는 행위란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됐고, 오히려 나중에 나이를 더 먹고서는 이것이 하나의 로망이라기보다 흉물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다. 그렇지만, 이곳 퐁네프 다리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를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해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짐짓 웃음이 나왔고, 이에 대해 다시 새롭게 관점을 바꾸게 됐다. 임진왜란도 발발하기 전인 1578년에 건설을 시작한 퐁네프 다리, '새 다리'라는 뜻과 달리 세월이 지나 센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어 40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다리는 이 자리에서 어떤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했을까? 랜드마크라고 하기에는 아쉽지만,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결코 별 것 아닌 건축물이 아니란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Paris, 퐁네프 다리 입구



남자 넷, 연인의 다리
위에서 생기는 흔한 일



  그런데, 연인의 다리라고 불리는 퐁네프에 남자 넷이 모였다. 새해벽두부터 남자 넷이서 연인의 다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일단 당시 각자의 상황을 돌아보자. 한 명은 연애했던 경험이 오래되어 마법사로 승천하기 직전의 상태였고, 두 명은 카자흐스탄에서 원래 연인과 헤어진 상황.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간절하게 사랑을 갈구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처럼 모든 것이 엉킨 상태. 한 마디로 그냥 최악이었다. 연인의 다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현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 따윈 꺼지라고 외치면서 우리 넷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염원을 담아 자물쇠를 하나 채웠다. 정말 웃기면서 슬픈 현실 그 자체였다. 아니다, 슬퍼하면 안 되지. 여기서 슬퍼하면 우린 지는 거다. 우린 연인의 다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 넷이 파리에서 우정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우리의 우정은 지속되고 있을까?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면 그와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진다는 것이 정설인데, 정답은 Yes도 No도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각자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결혼까지 하게 된 상황. 한 명은 Trouble이 생겨 자연스레 멀어지게 됐고, 한 명은 같은 업계에서 일하지만 거리가 있어 종종 연락만 하는 상태. 마지막으로 나와 끝까지 함께했던 종민이는 대만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록 내가 대만으로 놀러 갔을 때, 종민이 자취방에서 같이 자고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힌 지금 자연스레 멀어졌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흘러가는 인연을 억지로 막아서도 잡아서도 안 된다. 그냥 같이 있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하며, 종종 서로 연(然)이 닿을 때 기쁘게 만나는 것. 당시 파리에 있었던 꿈같았던 시간이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젊은 날 나란 에세이의 한 페이지였을 뿐.



아직 불에 타지 않은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여기가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시테(Cite) 섬을 꽤 오랜 시간 걸어서 오늘 오전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Dame de Paris)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 처음 유럽여행을 하며, 수없이 많은 서유럽 성당을 봤다. 처음에는 "우와~!!"란 감탄사가 나왔지만, 계속 성당을 보니 대게 비슷한 모습이라 그냥 도장깨기를 하듯이 각 국가의 성당을 찍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렇지만,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니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이걸 보자마자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웅장함, 그 자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란 게임을 하면서 프랑스로 게임을 하면 배경으로 중세 시대 파리 도심이 나오는데, 그 뒷배경으로 노트르담 성당이 나온다. 그래픽으로 구현한 것이 실제보다 더 멋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사진, 그래픽 다 필요 없다. 그냥 이건 실제로 봐야 그 감동을 체감할 수 있다.


옆모습마저도 웅장했던 노트르담 성당

  그런 대성당이 2019년 화재로 불에 타버렸다. 옛날에 숭례문이 탔을 때만큼 이것이 화재로 소실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면, 2024년까지는 복원을 한다고 하지만 100%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을까? 게다가 화재가 나면서 그 주변에 납 오염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움을 금치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어마어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화재로 인한 자연이든 문화재든 소실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당시 화재로 소실되기 전 노트르담 대성당 사진을 온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날의 노트르담 앞에는 아직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으며, 이른 새해 아침 그리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크리스마스트리가 어찌나 컸던지 나중에는 대성당 겉모습보다 트리가 더 눈에 들어올 지경이었다. 짧은 연말연시 1박 2일 프랑스 파리 여행의 여정. 성당 앞에 있는 지금 이 순간도 파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이제 파리 여행의 최종 목적지, 몽마르뜨 언덕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파리 시청사를 지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몽마르뜨까지 가본다. 예술인들의 성지라는 형용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경지를 펼치던 곳, 그리고 파리 시내 전망이 가장 아름다웠던 곳. 그곳에서 이번 파리 여행의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파리(Paris) 시청사 앞에 회전목마가 설치되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미슐랭 식당에 가봤니? (Around 에펠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