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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Oct 06. 2021

네? 여권을 잃어버렸다고요?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프랑스, 파리 #8

보정이 필요 없는 마지막 파리의 모습



Goodbye, Paris!



  연말연시 프랑스 파리 여행의 끝자락이다. 보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눈부셨던 파리 도심의 모습을 뒤로한 채, 이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야간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맡겨둔 한인민박 숙소로 돌아왔다. 그전에 밥은 먹어야겠지?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마지막 식사라니 만감이 교차한다. 저녁 식사는 숙소 근처에서 한인민박 사장님의 추천을 받은 곳으로 갔다. 놀랍게도 그의 추천은 '베트남 음식' 전문점이었다. 당연히 양식을 추천할 줄 알았는데, 베트남 쌀국수라니! 베트남은 모두가 알다시피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베트남인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 마찬가지로 영국에는 인도·파키스탄계 시민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잊고 지내던 세계사를 상기시키게 됐던 좋은 계기였다.



파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어느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어찌나 유명한 곳인지 식당은 손님으로 바글바글하다. 그런데, 눈에 띄었던 것은 손님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 세계여행을 하면서 정말 재밌는 것이 A라는 식당이 괜찮다고 블로그 등을 통해 한국에 알려지면, 그 나라에 여행 온 모든 한국인이 다 그 맛집에 모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국 사람으로 한가득이었다.


  유럽여행을 와서 대부분 끼니를 양식으로 때웠기 때문에 한식이 아니라도 Asian Cuisine을 먹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Pick이었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다낭과 같은 베트남 여행을 많이 떠나 반미, 분짜와 같은 다양한 음식을 접하기 쉬운 환경이다.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내게 베트남 음식은 쌀국수 아니면 월남쌈 두 가지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쌀국수를 시켜본다.


  대개 베트남 현지인이 운영하는 베트남 음식 전문점에 가면 따로 주문할 때에 고수에 관해 언급을 하지 않으면 고수가 쌀국수에 가득 담겨서 나온다. 한인민박 사장님이 여기를 추천하면서 신신당부했던 것이 베트남어로 '고수 빼주세요 (Đừng cho vào rau thơm nhé)'라는 텍스트를 반드시 캡처해서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아......! 카자흐스탄 중식당에서 고수의 맛을 제대로 본 이후에 절대 이건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이기에 아주 주옥과 같은 꿀팁이었다.


  그렇게 고수 없는 쌀국수가 나왔다. 한국에서 먹었던 쌀국수와 달리 베트남 이주민들이 프랑스에 오면서 현지에 맞춰 맛과 고명이 바뀐 듯싶었다. 비교하자면, 이곳 쌀국수의 특징은 양파가 많이 없고 동글동글한 피쉬볼(Fish Ball)이 기본 고명으로 들어가 있었다. 맛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 먹어본 프랜차이즈 음식점 육수 대비해서 훨씬 진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파리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버스로 상당히 긴 여정이었기 때문에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해치웠다. 해외여행 가서 한국 사람 많은 음식점은 일단 기본은 하는 것 같다는 교훈을 남기면서.



인파로 붐비는 파리의 거리 (출처 : fodors.com)



저기요,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연말연시를 즐기는 파리 시민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비는 거리를 뚫고 터벅터벅 메가버스(Mega Bus)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까지 연결하는 어느 쇼핑몰 통로로 진입해서 계속 걷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무슨 온라인 RPG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벤트가 하나 발생한 것이 아닌가! 우리 앞쪽에 한국인처럼 보이는 여성 6명의 무리가 있었는데,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중 한 명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女 : 혹시 오면서 여성 핸드백을 들고 급하게 걷거나 뛰는 사람 못 봤나요?


  무슨 일인고 하니, 그 무리는 파리에서 브뤼셀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러 가던 중에 6명 인원이 3명씩 나눠서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했다. 캐리어 위에 핸드백을 올리고 3명이 돌아올 때까지 밖에서 남은 3명이 짐을 봐주는 것이었는데, '눈 뜨고 코 베인 격'으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캐리어 위에 올려놨던 핸드백을 도난당한 것이다. 아니,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지키고 있는데 도둑을 맞았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말 파리 도둑의 실력은 대단했다. 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을 했을 때, 옆에서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친구 하나가 식당에서 잠깐 주문을 넣는 사이에 그걸 도둑맞은 것을 봤기 때문에 유럽 소매치기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식당 테이블에 나를 포함한 일행 4명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3명이나 지키고 있었는데 그걸 찰나에 가져가다니.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봤을 리가 없었고,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정말로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도난당한 가방 안에 여권까지 들어있던 것이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해외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다니, 답이 없는 일이었다. 도난당한 날로부터 약 2주간 더 유럽에 머무를 예정이고 숙소와 열차, 버스 등의 교통수단도 미리 예약을 다 해놔서 더더욱 답이 없었다. 6명 중에 3명만 예정대로 여행을 지속한다는 것이 말이야 쉽지 어떻게 타지에서 친구를 버리고 간다는 말인가? 게다가 시간은 밤이 깊어서 대사관은 문을 닫았을 것이고, 연말연시 연휴 기간이라 내일 대사관이 문을 열 것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파리에 남더라도 당장 이날 저녁에 머무를 숙소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외에서 돈보다 소중한 대한민국 여권 (출처 : 크라우드픽)



  우리가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숙소 문제였다. 우리도 버스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지만, 종민이가 신속하게 이번 파리 여행에서 머물렀던 한인민박 숙소 주인장과 연락을 취했다. 다행스럽게 6명씩이나 머무를 침대가 남아 있었다고. 천만다행이었다. 비록 내 일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역시 믿을 사람은 같은 한국인뿐이다.  


  일단 급한불은 껐지만, 여권이 문제였다. 도대체 얼마만큼 파리에 머물러야 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라 최악의 도시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도 그들이 걱정되어 종민이는 그중에 한 명과 연락처 교환을 했다. 그리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는데, 임시 여권까지 나오는데 3일 정도 소요가 됐고, 덕분에 추운 겨울 파리 길바닥에서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됐다고. 관광객, 특히 유럽에서 동양인 관광객은 현금이 많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여 현지 소매치기 타깃이 되기 쉽다. 그래서 여권·지갑은 상시 내 몸에 소지를 하고 다녀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도시에 익숙해지고 짐 들기가 귀찮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소매치기는 당신에게 다가와 쥐도 새도 모르게 당신의 귀중품을 가져갈 것이다.



메가버스 파리(Paris) 승강장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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