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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pogni Oct 11. 2021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가 맞습니다.

Pongi, 유라시아 여행기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

암스테르담 Road, 중앙역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되어 있다. (출처 : Vidiani.com)


암스테르담의 길은
'부채꼴' 형태로 되어있다.



  네덜란드 현지 시간으로 새벽 4시 무렵,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파리(Paris)에서 출발한 암스테르담(Amsterdam) 行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대략 5~6시간이나 되는 여정이었지만, 겨울철 찬 공기로 흠뻑 샤워한 우리는 따뜻한 버스 히터(Heater) 바람과 함께 시나브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것이다. 역시 새벽녘 도시는 한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래도 새벽에 도착한 런던과 브뤼셀을 비교하여 볼 때, 돌아다니는 사람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단 구글맵 상으로는 중앙역에서부터 숙소까지는 도보로 15~20분 정도 걸린다고 나온다. 아루래도 파리보다는 위도가 높아서 그런가? 상당히 겨울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부디 별문제 없이 숙소에 도착하길 바라본다.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나와 종민, 동욱 한국인 3명은 여기가 유럽이 아닌 카자흐스탄인 마냥 거리낌 없이 지도를 따라 걸어간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이란 도시는 상당히 길이 희한하게 나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구글맵을 줌 인(Zoom-in)하면 분명히 우리는 직진으로 걷고 있다. 그런데, 다시 줌 아웃(Zoom-out)하면 우리는 분명 직진을 했지만 목적지 대비 직진 방향으로 오히려 더 멀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 파악한 사실이지만, 암스테르담은 '부채꼴' 형태로 도로가 형성되어 그냥 길이 나있는 대로 따라가면 십중팔구 나도 모르게 옆으로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걸 알고도 나는 암스테르담 여행 기간 동안 길을 몇 번은 잃어버렸다. 솔직히 내가 갔던 25개국 중에 길 찾기 난이도 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턱이 없었던 우리는 문자 그대로 계속 직진만 고집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길을 잃어버리다 Part 2)



나 : 종민아 아까 왔던 도로 같은데????

종민 : 아니야, 나 진짜 제대로 가고 있어.



  역사는 반복된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서양의 속담 혹은 격언이다. 당시 인터넷이 작동되어 구글맵을 사용할 수 있었던 친구는 종민이 뿐이라 전적으로 그를 믿고 따라갔다. 하지만 벨기에 브뤼셀에서의 길을 잃어버리고난 후의 교훈을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고, 너무 전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길잡이 역할을 몰빵 하지 말자는 것을. 분명히 나는 같은 곳을 중심으로 뺑뺑 돌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인지했다. 그렇지만, 이미 영국에서 1년 정도를 어학연수 때문에 생활을 해봤으며 당시 서유럽 여행까지 했던 종민이를 전적으로 우린 믿고 있었다.


  지도를 보고 따라가고 있지만,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숙소와의 거리. 분명 지도만 따라가면 15~20분이면 도착할 거라고 했는데, 새벽 5시가 넘은 지금 한 시간도 넘게 비슷한 곳을 계속 맴돌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모두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었다. 게다가 네덜란드 1월 초 날씨는 생각보다 상당히 혹독한 추위와 바닷가와 가까운 영향 때문인지 칼바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나 : 우리 그냥 택시 타고 가는 게 어때??


  모두가 수긍한다. 브뤼셀에서 호스텔 주소가 잘못되어 택시를 타고 올바른 주소로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젠장,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택시를 잡을 거였으면 애초에 메가버스 도착지 중앙역에서 잡았어야 했는데, 시내 어중간한 게 있어서 지나다니는 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느 서유럽 도시와 다르지 않게 인도는 울퉁불퉁한 돌이 많아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게임으로 치면 H.P가 빠르게 닳는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이름 모를 어느 상점 앞에 우리는 주저앉아버렸다.



새벽녘에 도착한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에서



지성이면 감천



  그렇게 여기에 앉아 택시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중앙역으로 돌아가서 택시를 잡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뭐다? 그것은 바로 '부채꼴' 형태의 도로라는 사실이다. 숙소를 찾아갈 때와 마찬가지로 분명 직진하고 있는데 점점 중앙역과는 멀어지고 있다. 이걸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자성어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고, 그냥 지나가는 택시 한 대만 잡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시계가 새벽 5시 50분을 향해갈 무렵, 다행히도 택시 하나가 우리 앞에서 멈춰 섰다.


  천만다행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지 2시간 만에 처음으로 '안심'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보통 유럽이든 동남아든 관광지에서 외국인을 택시에 태우면 한 탕하려고 숙소까지 뱅뱅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자연스레 택시 탑승하면 구글맵을 켜는 게 습관이 됐는데, 다행스럽게 우리를 태운 택시기사는 숙소 주소를 알고 있었고 도로를 돌아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택시를 타고서 10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 타면 10분인데, 우리는 무슨 개고생을 새벽에 2시간 가까이나 했던 것인지 바보 같았다. 해봤자 20€ 정도 요금이 나왔는데, 이거 아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말인지. 그리고 우리는 택시 안에서 기사와 아무 말 없이 왔는데, 트렁크에 실린 짐을 내리면서 기사가 한마디 말을 건넨다.



Are you guys, Korean? I'm a Turk person.
Today, your payment is free because Turkey & Korea are brothers.


  Oh, my God! 한국인이냐고,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기 때문에 오늘 요금은 무료라고 한다. 6.25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를 우리는 '형제의 나라'라고 언론에서 부른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 덕분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유럽으로 오는 길목인 이스탄불에서 현지인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던 지라 터키 사람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 터키 사람인 본인도 네덜란드에서 일하는 이방인, 외국인 노동자라서 형편이 넉넉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도울 수가 있는 거지? 그의 넓은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체면'을 중요시하지 않는가?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그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요금을 지불하겠다고 얘기를 했다. 끝내 그는 거절했고 우리는 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가 맞다, 그는 혹시 암스테르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면서 연락처까지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친절, 특히 모든 것이 새로운 외국에서 받은 친절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는듯하다. 덕분에 나도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서울에서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하면 최대한 친절하게 도와주곤 했다. 어쨌든 나는 네덜란드에 도착했고, 3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일단 헤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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