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김치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예술

by ㅎㅎ

우리 외할머니는 음식을 정말 잘하신다. 어떻게 해야 우리 외할머니가 음식을 잘한다는 게 글로 증명이 될까? 할머니가 전라도 출신이라고 하면 증명이 될까 싶다. 정확하게 할머니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반평생을 사셨는데, 그곳에서 6남매를 키우셨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농사도 짓고 아이들도 길러야 했다. 꽤 넓은 밭과 전을 일구셨다고 들었다. 외할머니는 그 시절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시골과 농사 이야기만 들으면 지긋지긋해하셨다. 우리 엄마는 육 남매 중 막내였는데, 할머니가 막내딸을 예뻐하셨는지... 엄마는 시집오기 전까진 밥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엄마가 한식 중에 고난도 음식으로 꼽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죄로 오랜 시간 김치 AS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음식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 이전부터 나와 함께였다. 외할머니가 잘하는 음식은 홍어무침, 소고기 뭇국, 식혜, 떡, 각종 나물 등,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 최고는 김장김치이다. 할머니가 김치를 담아주신 25년 동안, 다른 집 김치를 입에도 못 댈 만큼 우리 가족의 입맛은 할머니 김치로 한없이 높아져있었다. 외할머니가 노령의 연세로 거동이 불편해지셨을 무렵에 김치를 그만 담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이후로 우리는 맛있는 김치를 찾는 하이에나들처럼 홈쇼핑에서 김치를 주문해 먹어보기도 하고, 직접 담아 먹기도 했지만... 몇 번의 실패 끝에 이젠 거의 포기 상태이다. 이십여 년 간 외할머니 김치 조수였던 우리 엄마는 분명 레시피를 아는데도 그 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젠 어떻게 좀 해보라며 나와 내 남동생은 엄마에게 둘둘거리고 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꼭 재료 탓을 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김장김치를 위해 오랫동안 재료를 구하셨다. 가을에 배추가 좋을 땐 배추를 사고, 여름에 고추가 좋을 때 고추를 샀다. 시장에 갔다 좋은 마늘이 나오면 그제야 마늘을 구입하셨다. 외할머니는 모든 재료를 이런 식으로 구입하셨다. 좋은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아마 오랜 농사경험에서 온 것일 것이다. 이렇게 엄선된 재료를 할머니는 김장김치에 아낌없이 부으셨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건 시작에 불가하다. 할머니는 배추 절이기에 큰 공을 들이셨다. 한 번 김장을 하시면 80-100포기가량 하셨는데,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배추를 절였다. 배추를 절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배추 잎사귀는 금방 절여지는데 머리 부분은 잘 절여지지 않는다. 머리와 잎사귀 부분이 고르게 잘 절여지는 게 중요한데, 할머니는 그래서 배추머리마다 소금을 넣어주셨다. 그리고 밤 사이 몇 번이나 일어나서 배추를 확인하셨다. 그리고 무는 손쉬운 채칼을 쓰지 않고 칼로 써셨다. 우리끼리 김장하다가 이 무채 썰기가 귀찮아서 할머니의 레시피를 무시하고 무를 적게 넣거나 채칼로 썬 적이 많다. 물론, 그땐 무채는 잘 먹지 않고 버리게 돼서 많이 넣는 건 낭비라는 핑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아주 참혹했다. 이렇게 갓, 무, 당근, 양파 썰기가 끝나면... 밀가루 풀을 쑤고, 할머니가 엄선한 재료로 김치를 버무릴 소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은 아주 정교하고 복잡해서 아직 나는 잘 모른다. 그리고 정해진 레시피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배추의 상태에 따라 아주 섬세한 밸런스 조절이 필요해 보였다. 외할머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외할머니 김장김치의 핵심 포인트는 할머니가 엄선해서 준비한 재료가 어우러져 그 맛의 균형이 이 김치를 다 먹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보통 장인정신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외할머니 김장김치를 지져먹고, 볶아먹고, 씻어먹을 때쯤이면, 할머니는 어떻게 귀신같이 아셨는지 다음 김치를 보내셨다. 우리 집 김치냉장고를 보고 계신 것 같은 정확함이다. 이렇게 프로의 손길에 길들여진 나의 입맛이 갑자기 아마추어인 우리 엄마 김치에 적응하려다 보니 많이 힘들었다. 엄마도 요리를 잘하지만 아직 김장김치는 많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김장철 늦가을에 들으면 가장 좋은 클래식 음악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브람스 음악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브람스의 곡은 숫자 3이 들어간 곡을 좋아한다.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바이올린 소나타 3번, 그리고 교향곡 3번의 3악장을 좋아한다. 클래식 처음 입문하시는 분이라면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을 꼭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를 도전해보고 싶은 분은 피아니스트 라두 루프의 음반을 들어보시라.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당연히 이작 펄만의 바이올린과 사무엘 샌더슨의 피아노 연주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특별히 연주자까지 지정해서 음악을 추천하는 이유는, 브람스의 음악은 연주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주자의 차이란 결국 음악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대한 이야기 일 것인데, 좋은 해석에 대한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어떤 해석이든 청중에게 설득력 있는 해석이 가장 좋은 해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추천한 이 연주자들은 여러분을 충분히 설득하고도 남을 연주자일 것이다. 브람스의 음악 해석이 연주자마다 제각각인 이유는 아마 겹겹이 쌓은 화성과 정교하고 복잡한 리듬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져야만 그제야 브람스 음악이 완성이 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실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곡가이다. 브람스의 작품이 완성되는 단계를 보면, 우리 외할머니의 김장김치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라 할머니와 엄마의 실력 차이가 떠오른다. 김장김치와 브람스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나 많다. 이번 늦가을엔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김장을 해보시라.

keyword
팔로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