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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다시 쓰다

<이혼, 다시 쓰다 >, 이경진

by 다정한 시옷


제목이 <이혼, 다시 쓰다> 여서 이혼 이후 삶을 재정비하는 과정의 글이라고 추측했다. 막상 읽으니 내 생각과 달랐다. 이혼 없이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써 내려간 이야기다.
상담기법이나 비폭력대화 등 성장과 치유를 위한 공부를 꾸준히 하신 듯하다. 목차 중 2장은 감각형(ST)의 남편과 인식형의 아내(NS)라서 벌어지는 소통의 오류, 그에 대한 해결방법을 탐색해 나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자신의 경험으로 사례분석을 하듯 자세하다.
mbti에 관심이 있으며, 비슷한 유형의 갈등을 겪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부분이 유용할 듯하다.

남편과의 일상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와, 나라면 같이 못 살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소통은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가 저자와 mbti성향이 똑같아서일까? 내 입장에서 저자의 남편 분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철없으며 폭력적이었다.
그런데 작가님의 남편 분 자리에 나의 엄마를 두면 성별과 관계만 다를 뿐, 나의 이야기가 된다.
예전에 나의 배우자에게,
"우리 엄마가 시어머니였다면 나 당신이랑 이혼했을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참기 힘들 정도로 엄마와 나는 소통이 어려웠다.
(지금도 쉽지 않으니까 '어렵다'라고 현재형 할까)
이혼할 수 없는 사이라서,
천륜지간에 사랑은 분명 존재해서,
각자 나아지기 위해 노력은 해 왔다.
나는 글을 썼고, 엄마는... 목욕을 했나?
알 수 없다, 엄마가 혼자만의 시간에 무얼 하는지.
엄마도 내가 틈틈이 읽는 건 알아도 쓰는 건 모르는 것처럼.

저번 주 토요일에 엄마와 긴 이야기가 있었다.
시작은 열두살이가 자전거를 탄다면서 헬멧을 쓰고 나가지 않은 것 때문이다.
열두살이는 사춘기 초입에서 할머니의 말에도 요즘 세모눈을 뜨고 짜증 낼 때가 있다. 최근에 자전거 사고를 당하고 크게 놀란 할머니로서는 잔소리가 안 나올 수 없는 상황.

부모인 너희는 왜 애 헬멧 하나도 안 챙기느냐, 같이 자전거 타는 00이는헬멧을 꼭 쓰던데, 너희는 어찌 그러냐. 내가 잔소리를 안 하고 싶어도~@%/^)!

나는 엄마가 T유형(과업형)인지 F유형(감정형)인지 모른다. 원래 감정형의 인간인데, 수용받지 못한 경험으로 강제적인 T성향이 되었을 수도,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작가님처럼 상담 심리에 관한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내 방식대로 연습과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요즘은 내 감정에 집중해서 할 말을 하려고 한다.

- 엄마, 그런 원망은 나한테 말하면 안 돼. 그건 할매 때문이지 나 때문 아니야.
- (예전에 엄마처럼 안 살 거라는 내 말에 엄마가 상처받았단 이야기를 꺼낸 상황) 그 말 했지. 근데 엄마,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 내 마음도 존중해 줘.
- 엄마가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니가 언제 내 생각 해준 적 있냐, 언제 챙긴 적 있냐, 하던 대로 해라' 그런 말은 나 너무 상처받아. 나는 한다고 하는데 엄마 마음에 안 들 수 있지. 그래도 그런 말 하지 마.
- 그냥 고맙다, 미안하다 그 말로 충분해. ("내가 왜 그 말을 해야 해? 내가 받아야지") 왜냐면, 엄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야 엄마 스스로에게도 그 말을 해주니까. 엄마는 자꾸 '나는 그런 말 못 해, 원래 못 하는 사람이야, 내 인생은 좋은 게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잖아. 늘 억울하고 화가 난다며? 엄마한테는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 좋은 말을 해줘야 돼. 그게 돼야 하니까, 그 말을 나한테 하라고. 거울처럼.

늘 싸움 같은 대화 끝에는 엄마도 울고 나도 울었는데,
이제 나는 울지 않고 말한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문장을 발화한다. 엄마는 여전히 눈물을 보이지만, 평정심을 찾는다. 대화를 마무리 짓고 일어선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퇴근한 엄마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집에 오지 않았던 열두살이 때문인가 했는데, "아까 사위가 나한테 말 걸었을 때, 대답 안 해서 미안해" 하고 끊었다.
- 어머님 왜 이러시지?
- 저번 주에 나한테 한소리 들어서 그래.

전화를 끊고 엄마는 목욕을 했을까.
"망할, 새끼가 뭔지." 하고 혼잣말을 했을까.
나는 엄마의 mbti를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엄마의 서사다. 그마저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리고 나의 서사와 지금의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안다. 그건 확실하게 다 안다.
서로가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을 존중하 주려고 애쓰는 태도. 그게 내가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다.
나는 글 쓰고,
엄마는 목욕하면서.

작가님은 나와 성향도 같지만(infp) 아이 셋을 키우는 것도, 글쓰기로 계속 나아가는 중이라는 점도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 책은 어떤 내용으로 쓰실까 궁금하다.
그때도 내가 쓴 얘기 같을까 기대된다.
꿈꾸는 달팽이란 작가명으로 브런치 활동을 하고 계셔서 이웃을 맺었다. 꾸준하게 글을 써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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