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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글에 내가 위로받는 날이 있다.

by 다정한 시옷

1.


학생들에게 실망하는 날이 있다.
실망 정도가 아니라 '인류애가 바사삭'이라 표현할 만큼,
'아 진짜 학교 오래 못 다니겠다' 싶을 만큼.
이년 전에 <크리스마스로 불리는 소년>을 읽고 블로그에 남긴 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으로 살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러니 착한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마법이고 기적 같은 일이다.
매일 기적을 만날 수 있고, 어느 교실에서나 마법이 일어난다.

이렇게 생각하니 좀 낫다.

2.

마법이라 하니 교실에 하나씩 가져다 놓았던 '미모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뇌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가>를 발췌해서 읽었는데, 자극을 주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에 관한 실험이 등장했다. 수능 비문학의 지문 같은 딱딱한 글이라 이해하기 만만치 않음을 잘 알지만, 앉아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 생기가 없어도 너무 없어서 아주 난처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여덟 개의 미모사를 주문해서 각 반에 하나씩 선물했다. 잎이 오므라들었다가 펴지는 과정을 직접 보라고. 배송받는 과정에서 이전 학교로 주소지를 설정하는 바람에 이틀 넘게 깜깜한 상자 속에 있느라 누렇고 시들시들한 미모사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 신기했다. 그렇게 신기하니?)
얼마 못 가 수명을 다할 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무려 세 반에서 미모사가 살아남았다.
영양제를 챙겨주고 분갈이를 하는가 하면,
저면관수로 긴 연휴를 무사 통과시킨 반도 있었고,
아예 연휴 동안 집에 가져가 정성 들여 돌본 반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모사에 꽃이 피었다.
미모사에 꽃이 핀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다 알까?
꽃이 핀 미모사는 나도 처음 봤다. 너무너무 신기하고 기특하고 대견했다.


3.

이렇게 쓴 미모사 이야기도 언젠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위로가 필요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학교란 그런 곳이다.
기적과 마법이 매일 일어나는,
학교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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