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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기쁨은 쓰기에서만 오지 않는다.

아무튼, 경주 여행

by 다정한 시옷

계획에 없던 경주 여행을 왔다.
발단은 토요일 아침,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장문의 카톡이 와 있었다.
공부 모임에서 만난 k선생님이었다. 선생님과 평소에 개인적인 톡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나 혼자 조용히 멘토로 삼으며 팬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아침 여섯 시에 보내온 카톡이었고,
요지는 이러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예약해 놓은 경주 숙소를 손해 보고 취소할 상황이다, 그런데 요즘 선생님이 서평이 잘 안 써져서 힘들다는 소식을 블로그를 통해 봤다, 선생님이 대신 가 주시면 좋겠다

카톡을 읽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마침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오던 배우자에게 소리쳤다.
"경주 가자!"
경주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에 있고,
아이들과 나들이하고 싶을 때 일 순위로 고려하는 여행지다. 나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받았다.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는 상투적인 거절의 '척'도 하지 않았다.
어디 이벤트에 당첨되어 숙박권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누군가가 나를 떠올려 건넨 선물이라니. 선물 주고 싶은 사람으로 내가 생각났다는 사실이 백 번 당첨되는 것보다 더 기뻤다.
그래서 이 선물, 꼭 받고 싶었다.

k선생님의 마음에 대해 짐작되는 바가 있긴 하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회지 담당자로부터 서평 쓰기 제안이 들어와서 쓰고 있었다. 그때 담당자는 누군가가 나의 블로그를 추천했다고 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k선생님의 추천이었으리라 추측한다. 포스팅의 퀄리티를 불문하고 꼬박꼬박 공감을 눌러주셨다는 게 그 근거다.
그리고 나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쓰고 있는 서평이 회지 편집자로부터 자꾸 수정요청을 받고 있고, 그래서 자기혐오에 빠져 있는 중이라는 블로그 글에 다소 미안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짐작은 짐작일 뿐, 굳이 확인은 안 할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를 추천해 준 그 누군가와
선뜻 숙소를 선물하며 응원해 준 k선생님에게 감사하다.
생각보다도 더 쓰기 어려운 서평에 쩔쩔매고 있지만,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인 줄 스스로 알고 있다. 독자들이 국어교사들이란 사실에 부담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고, 회지를 받아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 있던 중에 기회가 왔으니,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쩔쩔매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글을 써서 ○○○ 해야겠다.'라는 목표를 내려놓았다. 매일 쓰지 않아도 늘 쓰고 싶어 하는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어떤 날은 썼고, 또 어떤 날은 건너뛰었다.
글쓰기의 기쁨이 쓰는 데서 오는 것 말고는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욕심을 내려놓고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은,
쓰기의 세계 바깥에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내가 글을 쓰든, 쓰지 않든 나를 응원해 줄 사람이지만, 다행히 내가 '씀'을 선택함으로써 그 마음을 좀 더 잘 발견할 수 있었다.

경주는 그동안 내가 다녀보았던 것 중에 최고로
아름다웠고, 오래도록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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