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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Dec 26. 2023

10. 바보야, 중요한 건 닉네임이 아니야.

고민과 자기 검열 사이

블로그를 개설하고 수업 기록과 육아 이야기를 각각 두 개씩 포스팅했다. 그리고,

한 달이 가깝게 긴 침묵.

큐맘쌤이라고 닉네임에 반영했듯, 질문으로 성장하는 수업과 육아가 내 블로그의 테마였는데 대체 내가 가진 질문들이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써야 한다'는 생각은 매일 하는데 '뭘 쓰지?' 하는 생각이 자동재생 되며 막막해진다.

그 사이 오쌤에게 1:1 블로그 코칭을 받았다. 역시 잘 기록해 둬야지 했는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코칭을 시작하며 해 주신 의미 있는 질문들은 잊어버렸고, 대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 혼자 골똘할 동안 화면 너머에서 잘 기다려주시던 선생님 얼굴만 기억난다. 그리고 글쓰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선가 '삶'으로 이어졌던 것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스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치고 '결핍' 없는 사람이 없는데 나 역시 그렇다. 지금이야 교사라는 사회적 위치에 부캐로 책방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사람 같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힘든 산은 '과거에 매여 있는 나'다.

외동딸이란 입지가 무색할 정도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아빠와 일찌감치 헤어진 엄마는 낮에 중풍으로 쓰러진 외할머니를 수발했고, 밤에 일을 나갔다. 엄마의 인생은 내내 깜깜한 터널의 연속이었지만 내 기억에 가장 깊고 어두웠던 터널은 그때였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내 마음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고 보니 생을 끝내지 않고 버텨준 것만으로 존경하며 감사하다.     

그런 내 마음은 진심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수월히 써지는 나의 진심이다.


엄마의 삶은 몇 번이나 썼다. 일기에도 쓰고, 누군가와 대화 중에 털어놓기도 했으면서 나의 결핍, 내 인생에 자신 없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넘어야 할, 한없이 높은 산이다.

더 정확하게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그놈의 목소리다.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일기를 쓰며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웬만큼 단단한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숨어 있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용히, 모습을 바꿔서 아군인 척, 연기하고 있었다. 나를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못하게 얽매고 있다.


- 너는 보살펴야 할 아이도 셋이면서 학교일에 책방일에 글쓰기까지,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여러 개를 어떻게 하니?

- 너가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입장이 되나? 정보를 받아야 하지 않니?

- 글을 못 쓰는 이유는 너 자신의 컨텐츠 부족이나 게으름일 뿐이야

- 결핍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언제까지 그 탓을 할 거니?


그러니까 나는 엄마를 도와줄 수 없어 스스로가 참 쓸모없게 여겨지던 어린 시절로 자꾸만 돌아가 현재 나의 쓸모를 계속 검열하는 중이다.


선생님은 블로그 코칭이 아니라, 라이프 코칭이 필요하신 것 같아요.

오쌤은 나 자신에게 가장 친절하고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학생들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인 걸 알 수 있다고, 본인에게도 그렇게 해 주라고 하셨다.



닉네임을 짓자마자 개설했던 블로그의 대문을 수정했다.

나는 참 괜찮은 엄마이자 선생님이라고, 나에게 말해주기 위해 블로그를 합니다.

 

이 글의 제목을 쓰며 '바보야'를 넣을까 뺄까를 두고도 한참 고민했다. 그러다 단어 하나에 내가 진짜 바보가 될 것도 아닐뿐더러, 나 자신과 막역한 사이니까 그 정도는 괜찮다고, 그냥 두기로 한다.

잘했다, 이 정도면 나 자신에게 따뜻하다.

브랜딩에 성공해서 돈 벌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충실하게 나 자신되기가 브랜딩의 본질이라면 나는 성공했다. 

남들이 알아챌 만한 브랜딩은 아직 멀었지만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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