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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Dec 13. 2023

9. 믿는 만큼 자랄까요? 안 믿어도 자랍니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쓴 글.

십 년 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을 집 앞 스벅에서 만났다.

최근 2,3년간 만난 아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십 년 전 아이들은 왜 이렇게 떠오르는 이름이 많은지. 오늘 찾아온 두 명의 딸과 두 명의 아들은 그 시절 우리 반을 대표하는 모범생(딸들)과 말썽쟁이들(아들들), 아마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녀석들이다.


아들 S는 살이 많이 쪘다. 29살짜리 빵빵한 얼굴이 왜 그렇게 귀여운지 한참을 보며 웃었다. 징그럽게도 말을 안 듣던 19살엔 귀여움을 1도 느끼지 못했는데 말이다.

얼마나 징그러웠냐면,

아침마다 피시방에 먼저 출근했다가(?) 급식시간 맞춰서 오곤 했다. 때려도 안되고(체벌 가능 시절), 달래도 안되고, 성실한 친구를 옆에 붙여 챙기게 해도 제시간에 등, 하교하기가 안 됐다.

본인도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단다. 아마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학교 수업이 의미 없었을 테고, 출결로 인한 불이익은 먼 미래의 일이라 와닿지 않았을 테지.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니 얼마 전까지 화물차 운전을 했고, 지금은 차를 팔고 쉬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기업 계약직 채용 면접에 갔다가 출결 때문에 불합격한 얘기를 천연덕스럽게 한다. 구직하며 떼 본 생활기록부에 생각보다 자신의 학교생활이 잘 적혀있더라며, '다만'이라고 시작하는 문장에서 그때의 선생님 노고가 묻어나더란다.

또 다른 아들 J는 나의 최애 제자 중 한 녀석이다.

졸업하고도 몇 년이나 새해가 되면 인사해 오던 녀석.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져서 아직 자리를 못 잡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참이다.

그랬는데 오랜만에 찾아뵙는다더니,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줄 어찌 알고 친구들을 다 데리고 짜잔 나타났다. 다니던 대기업 계약직이 끝나고 현재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쉰다고 한다.

오늘 만나지 못했지만 근황토크로 알게 된 또 다른 말썽쟁이 H도 제 시간 등교가 어려운 1인이었는데, 뒤늦게 토목과에 들어가 지금은 건축현장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단다. 즉석 전화연결로 목소리를 들으니 십 년 전 말썽쟁이를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의젓하고 어른스럽다.



2.


큰 애를 임신했을 때 S가 했던 질문이 있다.

"샘, 애 낳았는데 저처럼 크면 어떡해요?"

마음이 얼마간 철렁하는 느낌이었다. 혼내야겠다 싶었다.

네가 어때서?

정말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틀과 기준이 좀 유연했더라면, 그때의 S는

공부는 좀 못해도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테다. 불성실한 생활은 자신을 신뢰할 수 없을 때 자포자기하는 방법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어른들이 믿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랐다. 그 사실이 몹시 기특하면서도 '내가 더 믿어었더라면, 더 잘 자랐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된다.

공부를 잘해서, 성실해서, 인성이 훌륭해서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믿을만해서 믿는 건 논리의 영역,

 '진짜 믿음'이란 근거가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존재에 대한 애정만으로 가능한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어떤 이들에게 이 아이들의 삶은 여전히 안타깝고 못 미덥다. 그러나 사회의 틀과 기준이 꽉 막히지 않다면, 정말 잘 자라준 아이들이다.

졸업한 지 십 년 뒤에 선생님을 찾아뵙는 일이 어디 쉬운가.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 앞에서 어떤 허세나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쉽겠는가 말이다.

자기 삶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엿보였다. S는 누구보다 열심히 자기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3.


스벅을 나와 인생 네 컷 사진을 함께 찍고, 헤어지기 전에 딸 둘은 꼭 안아보았다. 더 잘해줄걸, 말 안 듣는 아이들 몇 명에 너무 속상해하지 말걸, 내 속상함 때문에 순하게 잘 지내준 아이들이 예쁜 줄도 모르고 그 시절을 지나버렸다.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조금 울었다.

딸들은 샘 울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했고

아들들은 멋쩍은지 웃고 있었다.


집에 오니 S에게서 문자가 왔다.

-선생님 오늘 즐거웠어요ㅎㅎ 내일도 모레도 힘내세요.

대로변에서 차마 서른 살 머스마는 못 안아주겠더라고 답했더니

-마음으로 안아주든데요?ㅋㅋㅋ

한다.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높임말을 잘 못하는 S다.  

갈수록 친구가 될 텐데 제대로 된 높임말은 내가 포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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