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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Dec 10. 2023

8. 아직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닉네임

고민 끝에 지은 내 닉네임은 '큐맘쌤'이었다.

엄마(mom)이자 교사(ssam)라는 정체성으로 산 지 10년이 넘었으니, 그 안에서 내가 할 말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집에서 만나는 꼬맹이들의 십 년 '뒤' 모습을 학교에서 보고, 학교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의 십 년 '전' 모습을 집에서 만나다 보면 나의 두 정체성은 종종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나의 생활 속에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이러하다.


신규 발령 첫 해에 중학생 남자아이들을 가르쳤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이면서 어른과 아이의 관계이므로 '학생답지 않은 아이'를 대할 때면 나는 도저히 막막해지는 것이다. 아니 '아이답지 않은 학생'인가? 매사에 왜 그렇게 불성실하고 불손한지, 엉뚱함을 넘어서 선을 넘는 장난을 치고도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는 것은 단지 아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매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교사답지도, 어른답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연차를 더해가면서 자책을 줄였다. 내가 애를 써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가정에서부터 생긴 결핍은 내가 상담 몇 시간을 더 한다고 해서, 교환일기를 쓴다고 해서, 집에 찾아간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태도나 생활이 나아지는 것 없으니 나는 더 진이 빠져갔고 몇몇의 아이에게 쏟는 마음이 무거울수록 다른 아이들에게 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마음을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균형'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 내 마음 다쳐가며 애쓰는 일은 그만두었다. 신기한 일은, 그래도 상황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힘과 속도로 어른이 되어갔다. 고등학교에 가고, 졸업하고 나서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내 아이들을 키우는 데도 믿음이 있었다. 크고 작은 결핍이야 누구든 있고, 그걸 내가 애써서 다 채워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들은 제 힘과 속도로 크고, 집이 아니라면 학교에서, 학교가 아니면 학교 밖에서 자신의 멘토를 찾기도 한다.

물론 말은 담백하게 하지만, 전전긍긍할 때가 더 많다.

적어도 나는 남들보다 덜 자책하는 엄마라고 자부할 뿐이다.


 '큐'는 Question의 앞 글자를 땄다.

자책하기를 멈출 때쯤 깨달은 또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아이들에게 답을 주는 일은 무의하다는 사실이었다.

내 입장에서 던지는 질문조차 아이들의 삶과 한참 동떨어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제 삶에서 배우고 성장하려면, 나 역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질문하는 힘이 필요했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특히, 스스로 작품 속 인물이나 사건에 질문을 던져보게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당황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질문을 어떻게 만들어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어떻게 만들까? 하고 이어지는 수업.

"이렇게 해도 돼요?"라고 연달아 질문했다면 아주 훌륭하다. 평소라면 아무런 의문 없이 교사가 하는 말을 받아적고 있었을 테니까.


수많은 단어의 조합 끝에 지었다, 큐맘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 뭐가 된 것 마냥 부르려니, 어색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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