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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Jun 11. 2024

이보다 완벽한 '읽기'의 은유가 있을까.

책 먹는 여우, 프란체스카 비어만

1.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보고 나머지 시리즈를 읽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든 책, '책 먹는 여우'를 이제서야 가까이하고 있다.
읽을수록 책 읽기의 묘미를 완벽하게 은유하는 우화다.
읽기에 재미가 들면 아무것도 안 읽고 보내는 시간이 불안하게 여겨지는 것도,

(전단지라도 주워 읽는 여우아저씨)
구미를 당기는 책일수록 내 입맛에 맞게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첨가하게 되는 것도,

(책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여우아저씨)
실컷 읽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아웃풋이 되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조앤롤링을 연상케 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여우아저씨!)

책 먹는 여우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여섯 살이 꿀떡이 덕분인데, 꿀떡이의 책 읽기로 치자면 여우 아저씨의 읽기 방법과 정반대다.

어마어마한 읽기(인풋)으로 최고의 창작자(아웃풋)가 된 여우아저씨라면, 꿀떡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창작자였다.

그림만 보고 혼자 이야기를 지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럴듯한 이야기라 할 수는 없고,

보이는 그림에 대한 설명 수준이므로 독자인 나로서는 재미가 꽝이다. 게다가 인풋 없는 책 읽기라 그런지 워낙 빠른 요즘 또래에 비해 말하기(발음)와 읽기는 늦은 편인데, 뭐 어찌 되겠지. 엄마로서의 나는 재미가 대수겠나, 책이랑 가깝게만 지내다오, 한다.

그리고 여우 아저씨가 책의 간을 맞추듯 꿀떡이의 읽기 역시 간을 맞추는 과정이라 여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보다 완벽한 읽기가 없고,

책 읽기에 완벽한 은유라 표현한다면

이는 여우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나의 꿀떡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잘 지었어, 꿀떡이 이름 하나는 진짜.


2.

이렇게 재밌는 은유의 바다를
한 번만 보고 안 읽은 사람이 사실 우리 집에 있는데
내 글의 주연급 등장인물 열한 살이 가래떡이다.
왜 흥미가 없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남들 다 재밌다는데 마다한 책이 이 책만은 아니니까. 그저 사람 사는 일에 타이밍이 중요하듯 책이 찾아오는 때가 사람마다 달라서, 그 '때'가 아니었을 거라 여긴다.
시큰둥하던 전천당시리즈를 요즘 꾸준히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는 것 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래 타이밍,
읽는 사람 되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을까.  
인생은 타이밍이지


여우 아저씨가 어떤 계기로 책에 푹 빠졌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다른 시리즈에서는 나오려나)
그러나 빛나리 아저씨가 책에 빠지게 된 계기, 출판사까지 차려 널리 널리 책 파는 삶을 살 게 된 것은
마침 때가 맞았던 덕분이다.
지루한 교도관 생활에 여우 아저씨의 책은 얼마나 재미있게 느껴졌을까!
여우 아저씨 또한 빛나리 아저씨를 너무 일찍 만나거나 늦게 만났더라면
계속 읽고(먹고) 쓰는 삶을 살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의 열한살이도 내가 책 먹는 여우를 추천하던 그때는 때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일찍 들이미는 게 나았을 지도.


3.

타이밍과 관련해 떠오르는 생각을 덧붙이자면,
최근에 학교일을 준비하며(자율교육과정 운영이라고) 아이들에게 읽힐 고전책들을 골라야 했다.
고른 책들 중에는 조지오웰의 '1984'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있었는데,
'파수꾼'을 수업한 뒤라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때라고 판단한 거다.
진짜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두 권의 책은 빠지게 됐다. 협력하는 대학교에서 다른 의견을 제안했기 때문.
대신 군주론과 국부론이 목록에 올랐다. 좋은 책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아이들이 적절한 타이밍으로 만나는 책이 될 수 있을까 조금 염려되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나
내 염려보다도 일은 잘 되고, 아이들은 잘 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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