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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Jun 09. 2024

케닉 씨, 엄마들의 마음에 이름 붙여주세요

슬픔에 이름 붙이기(존 케닉)

점심때 양 적은 밥그릇이 서로 자기 거라고 싸우는 통에,
젤 많이 먹어야 할 큰아들이 막내 밥그릇을 쏠랑 가져가서, 그 바람에 막내가 징징하므로,
참지 않고 버럭 했다.


"먹지 마! 셋 다 밥 이리 줘! (한 숟가락씩만 남기고 다 덜어감) 됐지! 그리고, 저녁에 이모네랑 밥 먹기로 한 거 취소야! 우리 가족끼리 먹는 밥상에서 즐겁게, 맛있게 안 먹으면서 다른 식구들하고 밥 먹는 게 말이 돼!!"


밥 적게 먹고 싶을 수 있고, 둘째는 무슨 잘못이며, 이모네랑 밥약속 한 거랑 이거랑 아무 상관없는 줄 나도 안다.
사실은 그전에 큰아들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는데, 서운한 티를 덜 냈더니 엉뚱하게 동생들한테까지 불똥이 튄 것뿐이다.
음악회 가기로 한 날이었다.
겨울에 지브리 음악 공연 보고 왔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 자주 손잡고 음악회에 가야지 했는데, 근처에서 피아노&플롯연주가 있다길래 일주일 전 큰아들에게 같이 가겠느냐 물었고, 잠깐 생각하더니 그러마 하길래 두 자리 예매했었다.
그런데 당일이 되어 가기 싫다고 한 것이다,
이 열한 살 이가.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면서도 아쉬웠다.
혼자 가지 뭐, 하면서도 미운 것이다.
점심때 시작해서 저녁 먹고 나서 까지 나는 섭섭한 마음을 풀지 않았다.
열한 살 이는 저녁 먹는 식탁 앞에서 요구사항 많은 동생에게 "그냥 먹어~" 눈치도 주고, 알아서 책상 앞에 앉아 영어공부를 두 배로 한다. 까불지도 않고 차분하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내 입장에서 평화는 평화다.  이대로면 세 시간쯤 공부시켜도 군말 없이 할 것 같은데
어찌해 볼까.
동생들 일찍 잠들고 나는 주섬주섬 옷을 바꿔 입었다.  집 앞 스벅에 가는 건데 운동 가는 줄 알았나 보다.
다녀오세요, 하고 풀기 없이 인사한다.
같이 갈래? 했더니
반가움을 감추고 네, 하고 시무룩을 연기한다.
스벅에서 별 대화 없이 각자 할 일만 몰두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열한 살 이는 다시 까불이다.
엊그제 열한 살 이가 한 말,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더 사랑하거든요."는 진짜였다.


케닉 씨, 이 마음은 뭐라고 이름 붙이면 좋을까요?

아들 키우는 엄마가 성숙한 태도를 굳이 마다하고 똑같은 애가 돼서 삐쳐있는 마음. 삐친 마음이 오래가지 않음을 잘 알고, 푸는 방법은 더 잘 알지만 그래서 더 갈등 해결하기를 미루며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즐기는 (변태 같은) 마음.


혼자 보고 오는 음악회도 좋았다,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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