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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Aug 17. 2024

'어린이들'없이 살기

다둥맘의 고충은 이렇습니다.

셋을 키우며 느끼는 어려움 중에

별 것 아니라면 아닐 수도, 별 것일 수도 있는 일이 바로 '한 명 한 명 호명하는 일'이다.

남들 앞에 한 핏줄의 자식이란 티를 내고 싶어서 이름의 한 글자씩은 서로 겹치게 지었다. 그러니 더 헷갈리는 데다

재작년부터 반려견을 키우면서는 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데 온 식구들 이름을 다 동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막내 이름이 '은유'인데

'진하야 아니, 유하 아니, 얼구(멍멍이), 아이참,

은유야!' 하는 식이다.

둘째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걸었는데 셋째가 대답할 때는 십중팔구 내가 잘못 부른 경우다. 혼내려는 상황이었다면 사과까지 해야한다.

전체적인 호명이나 지시가 필요할 때 '어린이들!'하고 부른다. 큰애가 열한살인데, 머지 않아 중학생이 되면 셋을 뭐라고 통칭하면 좋을지 벌써 약간 고민이다.

자식들!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아무튼.

대체로 큰 문제없이 지내는 편이지만

나의 섬세하지 못한 육아가 반성되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저녁 양치를 8시 30분에 하기로 했다.

8시쯤 미리 알렸으니 남은 시간은 암묵적으로 자유시간.

막내는 보드게임 '도블'을 들고와 하자 하고,

(거짓말 안하고 오늘 도블만 오십 번쯤 했다.)

둘째는 책을 읽어달라한다.

'공평'이 육아의 최우선 가치인 다둥맘은 아이들 맘 상하지 않게, 적당히 기다리는 법도 일러주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다.

그러다 8시 36분이 됐다.


어린이들!
양치하기로 한 시간이 벌써 지났네?
어서 양치 합시다~



조금만 더 놀겠다, 이십 분 뒤에 하자, 도블 한번만 더하자 등등 민원이 쏟아졌지만,

나는 단호박이 되어 양치하러 갈 것을 다시 한 번 말했다.

여덟 살 둘째가 화장실로 향한다.

여섯 살 막내는 그 많던 눈치를 어디다 두고 오늘따라 도블타령이다.

열한 살이 첫째는 거실에서 없는 사람인 듯 반응이 없다.

한번 더 지시한다. 화가 좀 나지만 나는 교양있는 엄마니까 적당히 감정을 숨기고.

"어린이들! 여덟시 반에 양치하기로 약속했는데 시간이 지났잖아. 왜 약속을 안 지키지?"

그때 화장실로 향하던 둘째가 홱 돌아보더니 억울함을 내뱉는다.

그래서 양치하러 가고 있잖아요!


나의 교양이 소리없이 무너졌다.

억울해하는 아이에게 나의 억울함을 쏟아부었다.

엄마가 너에게 말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동생에게 한 말인데 왜 엄마에게 짜증이냐고.

나의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던 둘째의 눈빛이 자꾸 떠오른다. 분명 시작은 억울한 마음이었는데 엄마의 화를 듣는 동안 나쁜 아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는지, 눈빛이 '억울해요'에서 '죄송해요'로 바뀌어 있었다.

그 눈빛이 더 속상해서 '너희끼리 양치하고 자!'하고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후텁지근한 바람도 바람이라고, 빠르게 정신이 든다.

내가 '어린이들'이라고 통칭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가운데 낀 둘째가 아니라 외동이었다면 이렇게 억울할 일 없는 순하고 착한 아들인데.

아이들을 덩어리로 보지 않고, 하나하나 존재하는 인격으로 대해야하는데. 말이 거창하지 그냥 이름만 좀 제대로 불러주면 되는 일 나 편하자고 이렇게 무심 수가 있나.


내일은 아이들 이름 정확하게 열 번씩 불러주자.

딱 하루만 '어린이들'없이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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