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학생 보는 눈이 없다. 싹싹하고 애살있는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담임이나 다른 교사에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요 몇 년 간 계속 비담임으로 교과 수업만 들어가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담임에게 아이들은 적대감을 갖기 쉽고, 아이들 생활지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교과교사는 부딪힐 일이 적기 때문이다. 싹싹하고 애살이 많다고 생각했던 그 아이는 알고 보니 교사에게 막말을 했거나, 심지어 교사를 '우습게' 보는 건가 싶은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 아이'라고 썼지만 한 명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나의학생 보는 눈을 의심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올해 여학생들이라 그런가, 여럿 있다.
어제는 1교시에 A반 수업이있었다.
아슬아슬한 반이다. 발랄해서 수업 진행에 활기가 있지만, 휘둘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필 멘탈이 약한 전교 1등이 있고, 그의 엄마도 예민한 학부모에 속한다.
화장품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책상이 한 둘이 아니고,
아이들 간 관계가 묘하게 어긋나 있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반이다.
수업 시작 전, 학년실에 들렀다가 A반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 사이에 갈등이 있단 사실을 알았다. 유독 한 명의 아이가 사춘기가 씨게 왔는지(사춘기여도 그러면 안 되지!)
담임에게 선을 넘는 태도를 보였고, 담임은 교권보호 병가를 내서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교실에 들어가 가볍게 안부를 물으며 수업을 준비하는데,
교실이 영 어수선하다.
담임 선생님 손길이 닿지 않은 학급인 게 티가 났달까, 서늘하고 황량한 아이들의 내면세계 반영이랄까.
학급에 정이 가지 않으면 담임이라도 발길이 뜸해지게 마련이다. 한 번이라도 덜 보고 싶고, 이왕이면 용건만 보고 얼른 교무실로 가고 싶다.
수업을 시작하다가 이야기가 어쩌다 그리 흘렀는지 아니나 다를까, 담임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은근슬쩍 풀어놓는다. 수업 내용과 상관없이, 수업 맥락을 끊고서라도 아이들은 그 말을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
적당히 들어주고, 적당하게 끊을 줄 아는 것은 17년이란 경험치가 준 능력이다. 예전엔 나의 포지션을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지금은 같이 욕하지도, 대신 변호하지도 않는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할 뿐.
수업을 좀 일찍마치고 청소할 아이들을 찾는다.
교실 앞뒤로 좀 쓸어줄 사람?
칠판 주변 정리 좀 해 줄 사람?
이런 일에 손 들 법한 아이 두 명이 역시나 손을 든다.
빗자루를 잡는 아이에게 가쪽 벽 아래, 모서리 쪽 뭉친 머리카락을 위주로 싹싹 쓸어달라 이르고,
물티슈를 든 아이에게는 똥가리 난 분필부터 죄다 버리고 칠판 틀을 닦자 했다.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는 간단하게나마 주변 정리를 시켰다. 책상의 오와 열을 바로 하고, 가방 지퍼 닫게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과자 봉지도 줍게 하고. 환기도 좀 하고.(창문 한 번 안 열고 하루종일 에어컨 풀가동 중인 여름의 k교실)
반짝반짝 빛날 정도는 아니어도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이 차분하게 집중할 만큼의 환경은 된 것 같았다.
아직 나와 직접적인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고,
한 개인의 복잡한 내면과 주변 상황, 서사의 앞뒤를 생략한 채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은 것만으로 한 아이(혹은 학급)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할 수는 없다.
지금 내 앞에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를 아이들이 앉아 있다. 우리는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으며 서로를 안다고 말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건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학생 보는 눈이 없을 예정이고 지금 나와 맺고 있는 관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애정하는 학인 Y가 오늘 블로그에 쓴 글 중 그런 내용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소설을 읽히며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 갖기를 의도해 왔는데, 어느 순간 '인물을 좋아하기'의 맥락으로 수업을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 한 존재가 따뜻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착한 인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얼마든 변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대상이라는 사실에 기인하여야 한다. " - 너굴희쌤의 블로그,'소설을 제대로 읽으면 일어나는 일'중
그의 의견에 한 번, 문장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관계 맺기가 아슬아슬한 아이들, 내년에 혹시 내가 이 아이들의 담임이 된다면, 그땐 공격의 화살이 나에게 오겠지.
교실에 가는 일이 도살장 끌려가듯 괴로운 일일 때
우리 반 아이들과 잘 지내는 어떤 선생님이 계셔서 담임 사랑 못 받는 티가 덜 나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