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소설답게 읽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한강 작가의 노벨수상작을 축하하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오늘 아침까지도 가만히 되뇌고 있다. 세상에 노벨문학상이라니.
의학도 과학도 아니고 문학상이라서 더 기쁘고 경이롭다.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의학, 과학에 있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살리는 것은 문학이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쯤 노벨상 수상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나라에는 왜 인재가 없냐, 교육이 잘못됐다, 옆 나라 일본과 우리의 차이점이 뭐냐' 등등
비교와 비난이 성찰과 반성의 이름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이제 한강 작가의 수상은 어떤 담론을 불러올까.
문화계 블랙리스트였던 작가였던 만큼 이번 수상소식을 사상과 정치적 승리와 연관 짓는 댓글들이 많은데 어느 정도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쯤에서 멈추지 못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중에 광주와 제주의 일이 그 지역 사람들만의 일인 것처럼 떠든 댓글도 우습다.
소설을 읽긴 읽었을까?
아니면 읽었으되 소설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노벨문학상의 의미는 인간의 보편적인 삶과 정서를 수준 높은 언어로 풀어내었다는 얘기다. 번역을 거친 언어조차 그 안에 품은 정신을 훼손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광주와 제주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폭압적인 권력에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으며,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너무 중요하다는 뜻이다.
소설 감상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문학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을 전 세계인들은 이제 겨우 '발견'했다. 앞으로 더 많은 세계인들이, 더 많은 한국 작가와 작품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우리는 그 풍요를 이미 누리고 있었다.
한국 문학의 풍요를 누릴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심지어 책을 꽤나 읽는 사람이 그런 것이라면, 자신의 세계에 갇혀 다른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문학을 잘 읽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삶과 세상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데,
소설을 소설답게 읽는 방법과 상통한다.
나의 국어 수업을 듣는 아이들만큼은 이 풍요를 잘 누릴 수 있게 해야지. 소설을 소설답게 잘 읽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그전에
당분간은 나부터 이 풍요를 좀 더 누리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