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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 Mar 07. 2018

소수 반란군의 저항

영화 < 더 포스트>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언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언론과 우리들이 힘을 합쳐 바꿔 온 세상 속에서 지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현재 진행 중인 미투 운동과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있었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근 영화 <1987>에서도 다뤘듯이 6월 항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바뀐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언론이 그때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이라는 가정이 초래했을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언론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화 <1987>


영화 <더 포스트>는 미국이 30년간 감춰왔던 베트남 전쟁에 관한 비밀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워싱턴 포스트가 입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영화다. 소재를 다루는 방식과 메시지의 측면에서 가톨릭 보스턴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기자들이 파헤쳐나가는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떠올리게 하는데 <더 포스트>를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스포트라이트>도 한번 보시길 권하고 싶다.     


‘여성’ 경영인 캐서린    

 

영화는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자 캐서린(메릴 스트립)과 편집장인 벤(톰 행크스)에게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캐서린은 남편이 죽고 나서 얼떨결에 회사를 물려받은 인물이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신문사의 경영주인 캐서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딸인 자신이 아닌 그녀의 남편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신문의 발행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문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는 시대이다. 그곳에서 캐서린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회의장에서 캐서린이 말을 하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남성’ 프리츠가 말을 해야 듣는 그런 시대이다. 캐서린도 그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점차 위축되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야 할 때에도 자신이 아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게 된다. 그녀에게 워싱턴 포스트 경영자의 지위는 오히려 짐이 되어 그녀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면서 캐서린은 진퇴양난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펜타곤 페이퍼를 하루빨리 보도해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벤을 비롯한 기자들의 입장과, 보도를 하게 되면 정부의 압박을 받을 것이고 결국 회사가 망하게 될 것이라는 이사진들의 입장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에 캐서린은 자신의 가치관이 투영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벤의 부인 말에 따르면, 주변의 무시와 압박 속에서 자기 자신과 회사의 운명을 모두 걸은 실로 위대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시절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힘들게 싹을 틔워낸 캐서린이라는 한 여성의 변화와 성장을 담고 있으며 스필버그가 직접 말했듯이 페미니즘 영화이다.    


내 말 듣고 있니?

소수 반란군     


워싱턴 포스트가 결국 기사를 내고 난 이후에 백디키언은 벤을 찾아와 늘 자신은 ‘소수 반란군’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면서 큰 봉투를 건네준다. 그 봉투 안에는 워싱턴 포스트를 따라서 정부의 소송을 감수하고 기사를 낸 다른 신문사들의 신문이 들어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바뀐다. 세상에 저항하는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소수 반란군이 더 이상 소수가 아니게 될 때, 아니 사실상 원래 다수였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래서 소수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게 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영화는 그 소수 반란군의 저항과 승리를 다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을 억지로 일으키고 그것을 지속했던 (이 영화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미국에 대항하여 결국 승리를 일궈낸 베트남군과 미국의 거짓말들을 폭로했던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신문사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소수 반란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과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없어지고 있는 것, 현재 진행 중인 미투 운동도 다 그들이 했던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각종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만연해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편하게 누려왔던 이 상황이 역전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눈을 떴다. 눈을 뜬 이상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는 스필버그가 현시대에 쏘아 올린 소수 반란군의 조명탄이 될 것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        


  

그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계단은 많지만 중요한 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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