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에서 <조각집>까지
언제부터였을까. 그 목소리가 우리를 이렇게 매혹하게 된 것은.
3단 고음 열풍을 일으켰던 2011년 <좋은 날>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발표한 노래마다 차트 1위를 차지했던 가수는 아이유뿐이었다. 대중성뿐만 아니라 음악성까지 잡으며 모두가 사랑하는 가수가 된 그녀의 정규 5집 [LILAC]은 2021년 29살 아이유의 20대를 마무리하는 앨범이었다. 그렇게 [LILAC]을 들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새로운 아이유를 맞이할 준비하고 있던 찰나, [조각집]이라는 선물 같은 앨범이 2021년의 끝자락에 당도했다.
[조각집]을 말하기에 앞서 지금껏 아이유가 발표한 곡들의 흐름을 살펴보고 싶다. 팬이라면 대부분 알 듯이 그녀의 음악세계는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한 앨범 [CHAT-SHIRE]의 전과 후로 나뉜다. 소위 김이나 유니버스라고 불렸던 <좋은 날>, <너랑 나>, <분홍신>에서 충분히 대중성을 확보한 아이유는 [CHAT-SHIRE]에서부터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 (I)
사실 [CHAT-SHIRE] 타이틀곡 <스물셋>의 가사는 그 전까지와는 조금 다른, 아이유 최초의 고백 같은 노래다. “맞혀봐 어느 쪽이게”,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등의 가사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연예인으로 살아오며 끊임없이 대중들의 관심 속에 있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일명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며 여자 솔로 가수로서 최정상에 등극하고 “다 큰 척”, “덜 자란 척” 하고 있지만, 난 사실 “당신 맘에 들고 싶어”서 “여우인 척 곰인 척” 하기도 하는 수수께끼 스물셋이라는 고백은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적인 첫걸음이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스물셋>부터 아이유의 노래는 (적어도 선공개곡이나 타이틀곡에서) 잘 다듬어진 일기장이 되었다. 25살에 나온 <팔레트> 역시 자전적인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주목할 건 태도의 변화이다. “당신 맘에 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 아니라 이제 “날 좋아하는 거 알아”, “날 미워하는 거 알아” 라며 굳이 상대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 아이유는 자신을 “이제 조금 알 것 같”을 만큼 성장했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중심이 바로 서니 주위에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다음에 나온 <삐삐>를 보자. <팔레트>에서 중심을 잡은 아이유는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역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그 영역을 건드리는 사람에게 예의 따윈 없다. Stupid 하다고 대놓고 말하고 정색하며 경고한다. 단순히 “날 미워하는 거 알아”라고 인지하는 걸 넘어서, 자신을 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옐로카드와 함께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라고 단호히 말하며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라는 존재 (U)
미니 5집의 선공개곡 <Love Poem>은 자신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냈던 <스물셋> 만큼이나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노래였다. (물론 수록곡에선 이미 존재했지만) 그동안 ‘나 자신’이었던 노래의 메시지가 ‘너’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노래는 자연스레 일기장에서 편지가 되었다. 게다가 단순히 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 걷는 너의 뒤에” 있겠다고, “소리 내 우는 법을 잊는 널 위해 부”르겠다며 자신을 지켜봐 달라는 이 아티스트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아이유(IU)는 자신의 이름처럼 나(I)와 너(U)를 모두 포용하는 존재가 되었다.
<에잇>과 정규 5집 선공개곡 <Celebrity>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 잃어버린 것 같”은 상황이지만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다며 다독이고, 넌 “The one and only”인 존재이며 나의 “Celebrity”라고 말하는 아이유식 위로는 <Love Poem>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힘이 되어주었다.
추신
[LILAC]의 마지막 곡인 <에필로그>가 문을 닫는 곡인 줄 알았는데 뜻밖의 선물이 [조각집]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다. 말 그대로 아이유 20대 곳곳에 흩어져있던 조각들을 모은 노래들이다. 이 앨범은 말하자면 편지의 마지막에 붙은 추신 같은 앨범이다. 각 잡고 말하기엔 조금 부끄럽고 사소하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말들. 여기에는 나에 대한 고민과 (드라마)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정거장, 너, 겨울잠, 러브레터), 타인에 대한 위로 (러브레터, 드라마)가 모두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집]은 20대의 아이유를 마무리하기에 매우 적절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이 추신이 앞의 긴 내용보다 더 많은 걸 알려주기도 하니까.
“소설과 편지 사이,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을 눌러 쓴 ‘러브레터’로,
이 소품집을 닫는다” <러브레터> 곡 소개에서
그녀가 그동안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들을 읽으며 우린 자주 행복했다. 이 소품집을 들으며 겨울잠을 푹 자고 나면 30대라는 정거장에 서 있는 아이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의 아이유가 쓰는 일기와 편지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된다. 보잘것없지만 그간의 편지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진심을 눌러쓴 답장으로, 이 글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