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워서 2주 뒤에 보자는 의사 선생님을 뒤로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따라 나오셨다.
“이거는 산모수첩이고요. 이거는 임신 확인증이에요. 국민행복카드 발행하셔야 하고~”
지금 이 자리를 빌려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임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오는 순간부터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았어요. 하하
그렇게 다리로 걷는 건지 팔로 걷는지도 모르게 병원문을 나와 시동을 켜고 한참을 운전하지 못했다.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진정되기도 전에 남편에게 알려주겠다고 찍은 첫 사진
그 찰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남편도 갑상선 결과보단 아이가 우리에게 왔는지가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뭐라고 해? 맞아?”
“음, 4주 하는데?”
“에???”
하하하하하. 이 남자가 왜 나랑 결혼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
나랑 반응이 왜 이리 비슷하지? 진짜 미치겠네.
남편도 얼떨떨한 반응을 내비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유튜브에서 임신 커밍아웃 브이로그를 봤을 때 남편들의 반응을 보고
내 남편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는데 이번엔 둘 다 얼떨떨했으니 예상을 빗나갔다.
하지만 남편은 묵직한 한방이 있는 사람이니까.
“먹고 싶은 거 있음 퇴근할 때 사갈 테니까 카톡 해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카톡으로 수박을 외쳤다.
순간, 수박바 사가도 되겠냐고 하길래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더니 장난이라고 낄낄거렸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도 알렸다. 엄마는 브이로그 반응! 하이톤으로 전화기 넘어에서도 춤추고 있는 듯했다.
내가 원인 없이 아팠던 이유는 임신하려고 그랬던 거라면서 엄청 꺄꺄 거리셨다.
나에게는 한 번의 안타까운 경험이 있었다.
멘탈이 그렇게 무너질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꼭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나의 상태를 내 아이에게까지 전한 거 같아서, 그게 그 아이에게 엄청난 아픔인 거 같아 계속 울기만 했다.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위로는커녕 혼자 동굴을 지어놓고 끙끙 앓아왔다. 아무도 내게 손대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나만 있던 게 아니었다.
묵묵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우리 아가 다시 올 거라고 하면서 우는데 나에게만 찢어지는 아픔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힘든 날을 견뎌내고 나니
나에게 다시 이런 날이 찾아왔다. 아니 우리에게.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내리라.
새로운 책임감이 생겼다. 책임감이 생겨서 그런지 마음을 계속 다잡게 되었다.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한 손에는 엄청 큰 수박을 팔에 힘줄이 보이게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나에게 고맙다며 사온 보라색 꽃이 가득 담긴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남편은 분위기 따위는 날려버렸는지 꽃다발을 노룩 패스로 쥐어주고 오자마자 식탁에 놓인 산모수첩부터 확인했다.
산모수첩을 보고 또 보고 눈에서 손에서 수첩을 놓지 않았다.
남편이 고맙다며 사온 보라색 꽃다발 + 임신테스트기 + 한 달전 제주도에서 기념으로 사온 아가신발 = 너가 나에게 온 순간“여보 그렇게 좋아?”
“안 좋아 보여?”
“아니- 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덤덤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있잖아. 나 진짜 미칠 거 같아. 근데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근데 진짜 미치게 좋아.”
“오? 어어.”
내가 꽃다발과 임테기로 인증샷을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대는 동안 남편은 지그시 보던 산모수첩을 내려놓고 본인이 사 온 수박 한 통을 깍둑썰기로 썰어 커다란 반찬통 3통에 나눠서 담고 냉장고에 넣었다.
입맛 없다고 굶지 말고 이거라도 먹으라고 그래서 지금 다 썰어두는 거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 보게 되었다. 묘하게 행복했다.
본인의 저녁식사를 잊어버리고 수박을 자르는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있다.
너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좋지 않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남편은 뒤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나에게 안정기가 들어갈 때 까지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말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충분히 그 마음을 받아들였고 무슨 말인지도 이해했다. 그리고 동의했다. 안정기가 올 때까지는 우리끼리의 행복으로 알자 고했다.
“근데 남편, 엄마한테는 말했어.”
“어후~ 잘했어 엄마는 아셔야지. 내가 없을 때 딸을 챙겨주실 테니까.”
그리고 등을 토닥여 주는 남편의 손길에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 참았다.
기분 좋은 하루에 눈물 보단 웃고 싶었다.
어서 와. 우리 아가.
나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너만큼은 부족함 없이 지켜낼게.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