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오늘은 동생 일을 도와주러 작업현장에 나갔다.
삼복더위에 방진 마스크 쓰고, 선풍기 쌩쌩 돌아도
땀범벅은 자연스럽다.
오랜만에 흘리는 땀은 자연스럽고 시원하다.
작업복을 입고, 페인트 붓을 손에 쥐고, 양동이에 가득 담긴 색을 보니
내가 원래 하던 단타 매매 화면보다 훨씬 화려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붓질 몇 번, 땀 몇 방울 지나니
이 일도 단타처럼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단타로 몇 천 원을 벌던 날이 있다.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작업현장에서 페인트를 바르며, 하루 일당을 꿈꾸고 있다.
둘은 전혀 다른 방식 같지만,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하나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내기.”
단타는 ‘눈의 노동’이다.
잠깐의 기회를 잡기 위해 수많은 뉴스와 차트를 보며,
진입 타이밍을 고민하고, 매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한다.
막일은 ‘몸의 노동’이다.
무릎에 힘을 주고, 허리를 굽히며, 팔에 페인트가 묻어도 웃는다.
오늘은 동생 옆에서, 말없이 붓질을 했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그 색들은 나보다 훨씬 성실하게 벽에 스며들었다.
한 가지 색은 혼자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스며들고, 섞이고, 튀고, 번졌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주식도 그렇다.
가격 하나만 보아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정책, 세계정세, 테마, 수급, 이슈…
여러 조건이 섞이고, 엮이고, 맞물려
비로소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오늘 내가 만진 색들은 모두 다르지만,
그 색들이 모여 단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듯,
내가 살아가는 날들도 그렇게,
단타도, 막일도, 투자도, 노동도
모두 모여 내 인생을 칠해주고 있다.
나는 오늘,
단타와 막일,
그리고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
또 하나의 색을 덧칠하고 돌아왔다.
“여러 색이 만나 비로소 그림이 되고,
여러 경험이 만나 비로소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