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본(Narbonne) → 끼엥(Quillan), 102km
새벽 6시, 나르본의 하늘은 아직 여명에 젖어 있었다. 나는 오늘 특별히 붉은색 져지를 입었다. 태양보다 먼저 도로 위에 오른 듯한 기분. 페달을 밟자마자, 동쪽 하늘에 붉은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빛은 금빛 강물처럼 도로 위를 흘러내렸고, 내 져지는 그 빛을 받아 더 선명하게 불타올랐다.
길은 점점 산 속으로 파고들었다. 평지가 끝나자 891m의 고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고, 허벅지가 불타듯 무거워졌지만, 고개를 돌리면 와인빛 포도밭과 지중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힘을 보태주었다. 아침 햇살은 내 그림자를 길게 늘여, 언덕 위의 수풀 속에 거대한 자전거 그림자를 새겼다. 마치 내가 이 길의 일부가 된 듯했다.
중간에 스쳐간 작은 마을 레지냥-코르비에르(Lézignan-Corbières), 좁은 골목마다 프랑스 특유의 석조 건물들이 다가섰다. 빵집 앞에 줄 선 사람들, 열린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 잠시 멈춰 서서 그 일상을 눈에 담았다. 하지만 내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점심은 간단했다. 시골 식당에서 나온 뜨겁고 투박한 토마토 소스 스튜와 감자. 허기진 배에는 미슐랭급 요리 못지않게 훌륭했다. 땀에 절은 몸으로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퍼 넣을 때마다, 이 길 위에서 살아 있다는 실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오후, 뜨거운 태양은 뒤에서 등을 떠밀고 있었다. 붉은 져지 위로 햇살이 쏟아지자, 마치 내가 불꽃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동행들과 함께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을 달릴 때, 바람은 시원했지만 태양은 매섭게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다. 붉은 빛이 주는 에너지 덕분일까, 아니면 점점 다가오는 끼엥의 산세 때문일까.
해질 무렵, 드디어 끼엥에 도착했다.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은 오렌지빛 석양에 물들어 있었다. 오늘 하루, 102km, 5시간이 넘는 달리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 안의 또 다른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었다.
붉은 져지를 입고 태양을 등에 업은 이 날, 나는 확실히 길 위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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